황유민 인턴기자

한국에선 예로부터 ‘게임은 만악의 근원’이라는 인식이 뿌리 깊게 박혀있다. 이런 인식 탓인지 만 16세 미만의 청소년이 자정 이후 게임에 접속하지 못하게 하는 ‘셧다운제’는 학부모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청소년 게임중독을 방지하고자 한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그러나 게임에 대해 운운하기 전에 중독이 왜 발생하는지 알 필요가 있다.

캐나다 심리학자 브루스 알렉산더는 일명 ‘쥐 공원 실험’을 진행했다. 알렉산더는 좋은 사육 환경을 갖춘 ‘쥐 공원’ 케이지와 환경이 열악한 케이지에 각각 쥐들을 풀었다. 두 사육장엔 동일하게 마약 모르핀을 희석한 물과 그냥 물을 함께 놓았다. 쥐 공원 케이지에 사는 쥐는 모르핀 물을 거의 마시지 않았다. 열악한 환경에 처한 쥐는 쥐 공원 케이지의 쥐들보다 모르핀 물을 약 16배 더 마셨다. 심지어 모르핀에 중독된 쥐들에게 쾌적한 환경을 제공하자 쥐들의 중독 증세가 사라졌다. 해당 실험은 중독의 메커니즘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군의 20%가 마약에 빠진 채 고국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중독된 군인 중 무려 95%가 가정의 품에서 마약을 끊었다. 국민 1%가 마약 중독자인 포르투갈은 2000년대 초 마약 중독자들이 사회에 합류할 수 있도록 정책을 마련했다. 이후 10여 년 만에 마약 중독자 비율이 현저히 줄었다. 유럽의 다른 나라들이 포르투갈의 사례를 벤치마킹할 정도다. 대상 자체의 중독성보다 사회·환경적 요인이 더 크다는 얘기다.

지난 2018년,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강서구 PC방 살인사건에 대해 여성가족부 국정감사에서 ‘게임중독이 원인이다’라는 발언이 나왔다. 당시 윤종필 자유한국당 의원은 마약 중독자와 게임 중독자의 뇌 양상이 비슷하다는 사진도 제시했다. 그러나 도박·술·마약뿐만 아니라 좋아하는 것에 몰두한 뇌는 모두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윤 의원의 말대로라면 이 글을 쓰면서 몰두하는 기자도 중독판정을 받아야 한다.

셧다운제는 2011년 11월부터 발효된 법안이다. 밤 12시를 기준으로 청소년의 게임 접속을 금지하기 때문에 ‘신데렐라법’이라고도 불린다. 입법 예고 당시에도 국내 게이머들의 질타를 받았고 최근 다시 물의를 빚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게임 ‘마인크래프트’가 셧다운제 때문에 성인 게임이 될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게임의 소유사 마이크로소프트는 “셧다운제 때문에 한국용 서버를 따로 증설할 수는 없다”며 ‘마인크래프트’를 성인용으로 전환한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에 전국 게이머들이 셧다운제를 발안한 여성가족부에 분노하고 있다. ‘셧다운제를 폐지하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은 4일 만에 6만 명이 넘는 인원이 서명했다.

셧다운제는 이전에도 여러 해프닝을 불러온 적이 있다. 지난 2012년, 국내 유망주로 꼽히던 프로게이머 이승현은 게임 ‘스타크래프트2’ 대회에서 밤 11시 58분 셧다운제 경고 문구를 보고 경기를 무리하게 이끌다 패배했다. 당시 경기를 시청하던 1만 명의 관객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마이크 모하임 블리자드엔터테인먼트 대표는 해당 사건을 두고 “한국은 e스포츠 산업이 가장 발달한 나라이며, 실력 있고 재능 있는 선수들을 배출하는 나라인데 e스포츠 산업 성장을 억제하는 규제가 존재한다는 것이 외국인에게는 이상하다고 느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후 해외 게이머 사이에서 셧다운제는 일종의 조롱거리가 되었다.

셧다운제가 한국 게임산업의 위축을 불러왔다는 지적도 많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작성한 《셧다운제 규제의 경제적 효과 분석》보고서에 따르면 셧다운제는 게임 내수시장에 1조1천600억원의 손해를 일으켰다. 한국 게임산업은 세계적 규모를 지니고 있다. 2019년 기준 한국 게임 시장 규모는 세계 5위에 달한다. 또한 한국 문화콘텐츠 사업 중 게임이 압도적인 1위다. 국내 게임산업은 K-POP보다 무려 8배에 가까운 외화를 벌어들이고 있다. 그런 ‘효자 산업’이 국내에선 근거도 없이 미움받고 있다.

게임은 죄가 없다. 게임과 개인의 폭력성 간의 관계는 학계에서도 아직 의견이 분분하다. 중독의 원인은 파악하지도 않은 채 모든 책임을 게임으로 돌리는 안하무인을 멈춰야 한다. 셧다운제가 안하무인의 대표적 예시다. 셧다운제는 입법 당시부터 지금까지 실효성 논란이 끊이질 않는다. 이번 마인크래프트 사태로 셧다운제를 폐지하라는 목소리가 더욱 불거진 가운데, 게임과 중독에 대한 진중한 논의가 이뤄지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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