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도 이러는지는 모르겠으나, 내 초중고생 시절에는 학교 영어시간이 이러한 인사와 함께 시작되었다. 말할 것도 없이 “차렷, 경례! 안녕하세요~” 라는 한국식(?) 인사를 영어로 번역한 것이다. 반장이나 영어부장 홀로 일어나 Attention, bow!라고 하면 나머지 학생들은 앉은 채로 고개를 숙이며 Hello, teacher~ 하는 것이다. 절이라는 뜻의 ‘bow’라는 영어단어를 쓴 유일한 순간이었던 것 같다. 원어민 선생님이 홀로 가르치는 시간에는 이러한 인사를 시키지 않았다. 어쨌든 이게 지금 생각해보면 참 흥미로운 인사법이다.

언어와 문화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영어를 제대로 배우려면 영어를 제1 언어로 쓰는 사람들이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문화는 제쳐두고 단순히 언어만을 외우고 익힌다면 수박 겉핥기나 다를 바가 없다. 한국의 고등학교에서 가르치는 미국식 영어에는 기본적으로 ‘너나 나나 똑같이 하찮은 놈들이다’라는 의식이 깔려 있다. 영국에서 쫓겨나 신대륙으로 간 청교도들은 영국에서 자신을 구속했던 계급 의식을 벗어던지려 했기에 그들의 말씨에도 평등이라는 가치가 배어든 것이다. 그런데 구태여 강조할 것도 없이 한국의 문화, 특히 학교에서 가르치는 ‘바람직한’ 문화의 목록에서 평등이라는 가치는 충효, 우정, 예절 등에 비해서는 그다지 강조되지 않는다. 애초에 진짜 영어를 가르치기에는 어려운 환경이라는 것이다. 이러니 토익에서 아무리 고득점을 맞아도 원어민 앞에서는 한마디도 못 하는, 또 다른 의미의 ‘영포자’들이 양산된다.

영어를 가르친다면서 한국어 수업들과 똑같이 선생님께 고개 숙여 인사시키고, 더구나 그 인사말은 한국식(?) 인사를 영어로 직역한 것이다. 이러한 행태에서 큰 위화감이 느껴진다면 지나친 ‘불편충’일까? 적어도 영어 시간의 시작만큼은 다른 수업과는 다르게 영어 선생님의 ‘Hi~’라는 유쾌한 손 인사와 뒤따르는 학생들의 ‘Hello teacher’이라는 화답으로 시작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현대 영어는 신대륙으로 건너간 청교도들의 전유물만은 아니고 세계의 공용어이지 않은가? 어차피 세계 곳곳에서 쓰이는 언어, 조금은 교수자의 입맛대로 ‘한국식’으로 전용한다고 하여 그렇게 나쁜가? 이는 물론 타당한 지적이다. 사실 위의 글은 필자가 한국식(?) 교육에 대한 총체적인 반감을 영어 시간 인사법이라는 하나의 예시를 들며 드러낸 것에 불과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한국인의 언어사용의 큰 문제점 중 하나가 ‘직역’이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

다른 언어를 사용할 때에 직역만큼 위험한 습관이 없다. 내가 한 번도 배운 적이 없는 언어의 문장을 쓰려 한다고 해보자. 나는 단어 하나하나 사전을 찾아서 대입하거나 파파고나 구글 번역기의 도움을 빌려 문장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안녕’ ‘밥은 먹었어?’와 같은 아주아주 일상적인 말이 아닌 이상, 그 곧이곧대로 번역한 문장을 원어민에게 말하면 그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통·번역에서 중요한 말의 단위는 어휘보다도 큰 것, 즉 문장이나 발화의 전체 맥락이다. 같은 언어 화자들끼리는 단어 하나만 툭툭 던져도 문화와 상황의 맥락이 그 공백을 채워주지만, 다른 언어 화자들끼리는 그러한 도움을 받을 수 없다. 맥락이 배제된 기계적/단순 대입적/자국어 중심적인 직역은 때때로 큰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직역하느니 손짓, 발짓으로 설명하든지 차라리 입 다물고 있는 것이 나을 때도 있다. 물론 내가 사전이나 파파고에 검색해보는 모습을 갸륵하게 여겨, 말 상대가 내 어색한 직역투를 이해하려고 노력할 수야 있겠지만 모든 상황에서 그러한 친절을 바랄 수는 없다.

‘차렷, 경례! 안녕하세요 선생님’이라는 문장을 ‘Attention, bow! Hello, teacher~’로 바꿀 때, 그리고 비언어적 의사소통 행위로서 ‘고개 숙여 인사하기’를 유지할 때, 교육 현장에서 공유되어야 할 가치인 ‘타국의 문화적 맥락에 대한 이해와 존중’은 망각된다. 영어 시간에 학생들에게 전달되는 것은 ‘콩글리시’를 넘어 직역의 습관과 그 아래 깔려 있는 자문화 중심주의이다. 영어시간은 가장 세계적이어야 할 수업인데도, 직역된 인사말과 어휘 암기 퀴즈로 시작되며 가장 폐쇄적인 수업으로 변질된 것이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라는 헛소리는 과연 이러한 한국식(?) 직역 교육의 이상을 잘 표현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유형준 (소양로2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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