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문학] 이병욱의 춘천 문인들 제4회
[삶과 문학] 이병욱의 춘천 문인들 제4회
  • 이병욱 (작가, 춘천문인협회 회원)
  • 승인 2021.07.19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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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욱 (작가, 춘천문인협회 회원)

춘고 2학년 때에는 특기할 일이 없었다. 

3학년이 되면서, 졸업을 앞두고  내 문학인생에 큰 사건이 생겼다. 

그 때 일을 쓴 글이 있어 소개한다. 

 

…  1969년 7월 21일, 미국 나사에서 쏘아올린 우주선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했다. 역사적인 그 장면을 지켜보느라 TV가 있는, 동네에서 제일 잘사는 집의 거실은 동네사람들로 붐볐다. 아폴로 11호는 이런저런 것들을 실험하고 채집하느라 며칠 간 달에 있을 거라 했다. 

나는 예비고사를 앞둔 3학년이라 시험공부에 매진해야 하는데 그러질 못했다. 우리 인간이 쏘아올린 우주선이 달에 착륙해 있다는데, 편안히 방에 앉아 문제집을 펴 놓고 앉아 공부한다는 게 영 납득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엎치락뒤치락 하다가 결국 옷을 갈아입고 학교로 갔다. 삼십 분은 걸어서 도착한 학교. 아무도 없이 텅 비어 있었다. 여름방학에 들어갔으니 그럴 수밖에 없지만, 그 또한 나로서는 납득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천여 명의 학생들이 북적거리던 공간이 마술이라도 부려진 듯, 단 한 명도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니 말이다.

혼자 텅 빈 교내를 방황하다가 가까이에 있는 공설운동장으로 갔다. 다행히도 그곳에 동기애들 몇이 모여 있었다. 걔네들마저 없었더라면 그 날 나는 어떡할 뻔했을까.

걔네들은 어떤 애가 떠드는 얘기를 아주 재미있어 하며 둥글게 모여 있었다. 내가 다가갔는데도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그 애의 얘기에 푹 빠져 있었다.

그 애는 우리와 동기지만 학교를 안 다녔다. 깡패 비슷하게 거리에서 지내는 아이인데 웬 일로 공설운동장 한 구석에 나타나, 동기애들한테 무슨 얘기를 해주고 있는 것이다.

음담이었다. 우리 또래 여학생을 지난밤에 어쨌다는 음담을 아주 실감나게 늘어놓고 있었다. 

공설운동장의 서쪽에는 미군부대가 있었다. 미군부대에서 성조기 하강식을 하느라 웅장한 음악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 때 서녘하늘에 붉은 노을이 선연했다.

달에 아폴로 우주선이 착륙해 있다는데 학교 다니지 않는 애가 열심히 음담을 늘어놓고, 진위 여부가 분명치 않은 그 음담을 학교 다니는 동기애들이 킬킬거리며 재미나게 듣고 있고, 미군부대에서는 성조기 하강식이 진행되고, 천여 명의 학생이 북적거렸던 학교는 갑자기 텅 빈 건물로 있고, 하는 뭐라 간단히 표현할 수 없는 상황이 나를 못 견디게 했다.

나는 다시 먼 교동 집으로, 삼십여 분 걸어서 돌아왔다. 집이라고는 하나, 독채 전셋집이다. 

나는 다락방에 올라가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대학입학을 위한 예비고사가 코앞인데, 소설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지 않고는 그 즈음에 벌어지는 상황들을 견딜 수가 없었다. 방학이 끝나기 전까지 소설 두 편을 완성했다. 그냥 갖고 있기에는 억울한 생각에 한 편은 13회 학원문학상에, 또 한 편은 우석대학교에서 주최하는 17회 현상문예에 응모했다. 

방학이 끝나고 두 달 지나, 놀라운 소식이 학교에 잇달아 전해졌다. 그 두 편이 모두 당선됐다는 소식이다. 

…  내가 고교 3학년일 때 전국단위 문학관련 상을 두 개나 타게 되면서‘미래의 소설가’를 꿈꾸게 된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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