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태 (춘천 금산초 교사, 현 전교조강원지부 정책실장)
안상태 (춘천 금산초 교사, 현 전교조강원지부 정책실장)

요새 카드사나 보험사 또는 쇼핑몰의 고객센터에 전화를 하다 보면 전화벨 소리 대신 수신 대기음으로 대략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오는 경우가 많다.

“안녕하십니까?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주시는 고객님 덕분에 우리는 오늘도 웃을 수 있습니다. 산업안전보건법의 고객 응대 근로자 보호조치가 시행되어 서비스 품질관리를 위해 통화 내용은 모두 녹음됩니다. 상담원을 연결해드리겠습니다.”

산업안전보건법은 사업주가 주로 고객을 직접 대면하거나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상대하면서 상품을 판매하거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무에 종사하는 고객 응대 근로자가 겪을 고통을 예방하는 데 필요한 조치를 취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산업안전보건법 제41조, 고객의 폭언 등으로 인한 건강장해 예방조치) 이러한 통화 대기음은 그러한 조치의 하나로 시행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요즈음 학교에 전화할 때 이런 통화 대기음이 나오는 곳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것은 무슨 뜻일까? 일부이기는 하지만 자녀가 다니는 학교에 전화를 해 폭언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뜻이다. 학교에도 이러한 ‘고객 응대’를 남들보다 먼저 해야 하는 분들이 있다. 기업의 고객센터가 기업의 소통창구 역할을 하는 가장 중요한 부서 중 하나이듯 학교는 교무실에서 그러한 역할을 한다. 교무실에는 교사들을 지원하기 위해 헌신하는 교감과 행정사들이 일하는 곳이다. 교사들을 돕는 분은 학생들을 돕는 분들이다. 학교라는 공간에서는 나를 제외한 모든 타인, 사물과 현상은 늘 배움의 대상이다. 이분들의 축 처진 어깨와 무거운 발걸음을 보고 삶의 유쾌함과 긍정을 배울 학생은 많지 않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학습만 하지 않는다. 쉬는 시간에는 대리점에서 배달해준 우유를 마시고, 점심시간에는 영양사들이 만든 식단에 따라 조리사들의 정성이 담긴 음식을 먹으며, 수업을 마친 후에는 자신의 진로와 적성에 맞게 다양한 방과 후 프로그램을 경험한다. 이렇듯 학교는 여러 구성원들이 각자 맡은 바 역할을 충실히 해내며 아이들의 미래를 창조하는 고귀한 사업을 하고 있다. 학교도 법의 보호를 받아야 하는 사업장인 것이다. 학교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학교에 쏟는 힘만큼 우리의 현재와 미래가 더욱 풍성해진다.

교육을 통해 이루어야 할 가장 이상적인 인간상은 무엇일까? 어르신들의 경험을 통해 우러나오는 말에 그 답이 있다. “그 사람, 법 없이도 살 사람이야.” 인간성이 없어지니 예의가 생기고 예의가 없어지니 정의가 생기고 정의가 없어지니 법이 생긴다. 학생들이 다니는 학교에서, 어른들의 전화 예절을 법으로 알려줘야 한다는 건 어찌 보면 너무 서글픈 일이다. 우리 모두가 “나는 ○학년 ○반 누구의 부모입니다. 무슨 일로 ○학년 ○반 선생님과 통화하고 싶습니다.”라고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누군가에게 먼저 정중하게 말을 건넬 수 있다면 우리 아이들도 인간의 존엄성을 글이 아닌 눈과 귀로 보다 쉽고 분명하게 배울 수 있을 것이다. 혹시 아는가. 법 없이도 사는 사람들이 자라면 법 없어도 살 수 있는 세상이 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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