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협력사업 전문가 김남윤 씨

얼마 전 공적개발원조사업차 부탄을 다녀오신 김남윤(68)씨를 만났다. 그는 폴리텍 대학 교수 출신으로 은퇴 시기가 다가 올 즈음 ODA파견전문가 자격취득을 하고 2015년부터 해외협력사업을 시작한 국제협력사업 전문가이다. 폴리텍 대학에서 건축과 사회를 가르치던 교육자 타이틀을 벗고 카메룬, 에티오피아, 부탄 등 현장에서 역량강화사업을 진행해 왔다. ODA(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란 개발도상국의 경제발전·사회발전·복지증진 등을 주 목적으로 하는 원조로 공적개발원조 또는 정부개발원조라고도 한다. 대한민국은 외교부 산하 코이카(KOIKA:Korea International Cooperation Agency), 즉 한국국제협력단을 설립해 ODA원조 중에서 무상협력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무상협력사업은 대한민국에서 대가를 바라지 않고 원조하는 사업을 말하는 것으로 김남윤 씨처럼 전문가 파견에 소요되는 급여 등을 포함한 전체 사업비를 국가에서 지원한다. 코이카를 통해 진행한 국제협력전문가로서의 활동이야기를 들으며 이러한 것을 이해하게 됐다. 

그는 후평동 단독주택에서 40년을 살며 300여종 식물로 비밀의 정원을 가꾸어 놓고 반 지하 공간에 아내를 위한 소통공간을 만들었다. 음식도 사람도 유기농인 부탄에서 들여온 구수한 차 한 잔을 곁들이며 2015년부터 지난 7월 8일까지 방문했던 다양한 국가에서 일어난 이야기들을 들었다. 

지난 8일 국제협력사업차 부탄을 다녀온 김남윤 씨가 그의 집에 마련한 소통공간에서 부탄 커피를 들고 웃고 있다.

첫 파견지, 아프리카 카메룬

ODA 파견인력명단에 올라 2015년에 처음으로 원조활동을 떠난 곳이 아프리카의 ‘카메룬’이었다. 건축과 설비 등 기반시설이 구비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용기를 내 떠났지만 현장에 도착해선 말문이 막힐 정도로 처참한 심정이 들었다. 일단 그가 간 곳은 제국주의 당시 프랑스령 이었기에 영어대신 불어를 썼고 지붕도 완성되지 않은 건축물에 교육을 위해 한국에서 보낸 기계들은 도착 전 이었다. 

“정말 처참한 심정이었어요. 언어도 안 되는데 기반시설도 안 돼 있고, 교육도 이론으로밖에 할 수 없었죠. 에볼라 바이러스 감염 공포도 확산 됐었고 모기들도 득실 됐는데 정말 큰일 나겠다 싶어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어요. 그러면서도 ‘ODA사업전문가 중 제일 단기 포기자가 되는 건 아닌가’하는 생각에 마음도 불편해 지고...”

약해지는 마음을 다잡게 만든 건, 그의 어려운 마음을 이해하고 절실한 마음으로 수업에 임한 학생들이었다. 이 교육을 위해 학생들도 많은 것을 할애해야했다는 사실과 더운 날씨에도 양복을 구해 입어가며 예의 있게 수업에 임하려던 학생들을 보며 약해지는 마음을 떨쳐내고 그들과 함께 할 다짐을 했다. 현장실습을 위해 한국으로 데리고 와서 3개월을 함께 했는데 그때 학생들이 고국으로 돌아가 또 다른 기술자들을 키워 내고 있다. 매우 뿌듯하고 감사한 일이다. 그때 학생들은 아직도 김남윤 씨를 대디(아빠)라고 부른다. 

죽어도 이의제기 않겠다는 각서에 싸인해야 했던 ‘이라크’

2015년 이라크에선 무장단체 ‘IS’의 활동이 한참이었고 끔찍한 자살테러가 빈번한 시기였다. 한국도 테러관련 소식이 심심찮게 들렸었다. 이라크는 후세인이 죽고 기반시설이 무너지며 힘든 상황에 처했지만 한국은 자동차 산업과 석유수입이라는 유기적 통상 관계 속에서 정부 대 정부 지원 사업을 지속해 왔다. 도중 ‘한-이라크 직업전문 학교’지붕이 무너져 수리 기술자로 김남윤 씨가 한 달 가량 파견됐다. 

“현장에서 죽어도 이의를 제기 않겠다는 서명을 꼭 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가족이 걱정을 하긴 했지만 서명까지 하고 간 줄은 몰랐죠. 그 사실을 최근에 말해줬어요. 이라크에 도착하면서 공항에 내리니 기온이 섭씨 54도인데 그냥 화염방사기 쏘는 듯 한 열기가 느껴지더라고요. 테러범들이 이목집중을 위해 외국인 테러를 많이 노렸기 때문에 바로 영국군의 보호를 받고 호텔과 현장, 노동부만 오가면서 오로지 일만했어요. 호텔입구는 장갑차가 지키고 있었고요.”

여성 기술자가 많은 부탄에서 미장을 가르치고 있는 김남윤 씨.

춘천시와 자매결연 맺은 아프리카 허브국가 ‘에티오피아’

6.25 전쟁당시 에티오피아의 황제 ‘하일레 셀라시’는 친위부대인 ‘강뉴부대’ 6천37명을 남한에 파견했다. 강뉴부대는 주로 강원도 중동부 전선에서 253번의 치열한 격전을 벌여 전승하고 한명의 포로도 남기지 않았던 부대로 유명하다. 춘천시는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와 자매결연을 맺고 2004년 기념비 및 기념탑을 세웠다. 

 2011년 이명박 대통령은 대한민국 수장으로서 에티오피아를 처음 방문했다. 그리고 전쟁참전에 대한 보은으로 많은 원조를 약속했다. 그중하나가 김남윤 씨가 함께한 프로젝트 ‘참전용사 후손 역량강화사업’이다. 

“한 회에 100여 명 씩 한국으로 초청해 3차년을 진행 할 계획이었죠. 그런데 1회 때 한국에 들어온 학생 100명 중 58명이 고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망명을 시도한 거예요. 그 나라에 돌아갈 인재양성을 하는게 목표였는데 두 나라 모두 난감하게 된거죠. 그래서 2차 년 부터는 에티오피아 현지에서 사업을 진행했어요. 그 망명자 열 너덧 명이 후평동 청실아파트에 숨어 지내다가 흩어져 본인들 갈 길을 갔다고 들은 적도 있어요. 어쨌든 그래서 봉재, 용접, 전기·전산, 건축, 등 6개 분야 전문가들이 현지에서 교육을 진행하게 됐는데 한번 가면 3개월에서 6개월을 머물러요. 17년부터 3년 연속 다녔는데 지난해는 코로나 때문에 못들어 갔죠. 물론 아쉬운 마음 이예요”

그는 에티오피아 제자와 친구들을 떠올리며 올해 코로나 상황이 유연해져 다시 방문 하게 되기를 바랐다.

에티오피아에서 한국기업이 지원하는 복지관 건설 중 제자들과 함께.

“부탄은 유기농 식품도 좋지만 유기농 국민이 더 좋습니다”

코로나로 전 세계 국민들 발이 묶였다. 원조사업도 마찬가지라 2020년은 아무것도 못하고 지나갈 판이었다. 지난해 연말 부탄 정부에서 건축기술자를 초청하기 전 까지...

은둔의 나라 부탄은 75만의 적은 인구에 인도에 대한 상호의존성이 높다. 건축분야도 인도 인부들이 많았는데 코로나발생으로 인도에 발이 묶였다. 부탄정부에서는 한국, 독일 등에 전문가 파견을 요청했고 한국에선 그를 포함 세 명이 부탄으로 향했다. 

“승려가 30%라서 건축기술을 배우는 여성들이 많았어요. 힘든 일도 모두 열심히 했고 얼마나 정이 많은지 몰라요. 부탄사람들은 자연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자연이 주는 만큼 생산해요. 열매를 위해 가지를 자르는 전지도 안 할 정도예요. 대다수가 농업과 관광에 종사하면서도 국가질서와 환경보호를 위해 관광인구를 제한하기도 합니다.

부탄에서 6개월간 건축교육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 노동부 장관상을 받았다. 

건축교육 커리큘럼을 모두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에 고맙게도 장관상을 받게 됐어요. 시상하는 순간에 부탄의 어떤 점이 좋았는지 묻는데 ‘이곳에서 나는 오가닉(유기농)농산품도 좋지만 유기농 국민들이 더 좋았다, 그래서 꼭 다시 오고싶다’라고 말했어요”

그는 고되지만 값진 경험을 하게 된 것이 자신의 능력이라기보다 운이 좋았던 것뿐이라고 말한다. 그동안 개인적으로 꾸준히 기반을 닦아 왔기 때문이라고는 생각지 않고 그저 운이 좋아서 감사하고 고마운 일들이 생겼다고 말한다.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는 부탄사람을 보는 듯하다. 마당에 자리 잡은 야생초들이 잘 자라는 모습에도 행복한 미소가 넘친다. 각국에서 자리잡아가는 제자들 보는 마음도 이 같을까...

유은숙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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