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프리픽

노쇼(No-show)는 예약한 사람이 나타나지 않는 경우를 말한다. 특히 시간에 맞추어 음식을 준비해 놓고 기다리는 식당 주인의 입장에서 보면 이런 낭패가 없다. 이게 항공사를 비롯해 하나의 사회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서구 사회보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권에서 심하다.

예약이라는 제도는 사실 와인에서 비롯됐다. 모두가 아는 것처럼 와인은 적당한 산화와 적절한 온도에서 맛이 정점에 이른다. 그걸 찾기 위해서 오랜 기간의 숙성과 마시는 당일의 디캔팅 등이 필요해진다. 그렇다면 모처럼 고급 식당에서 와인을 마시기로 한 경우엔 어떤 조치들이 필요할까?

가령 저녁 7시 만찬에 어떤 고급 와인을 곁들이기로 했다면 식당에서는 이런 준비들이 필요해진다. 손님은 미리 와인을 선택해야 한다. 와인마다 숙성도와 에어링의 속도 그리고 마시기 적절한 온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유능한 소믈리에는 주문한 와인이 가장 최상의 맛을 낼 때를 손님이 자리에 앉아 와인을 기다리고 있는 시간과 일치시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 미리 주문을 받아야 하고 그 와인 특성에 맞는 사전 준비가 필요해진다. 

지금도 프랑스의 최고급 레스토랑은 예약 시에 와인의 주문을 미리 받는다. 파리의 라 뚜르 다르장(La Tour d’Argent) 정도라면 예약을 받을 때 정중히 선호하는 와인이 있는지를 슬쩍 묻는다. 여기서 ‘슬쩍’은 손님의 정도에 따라 혹시 결례가 될 것을 우려해서다. 이런 급의 식당에 익숙한 고객이라면 당연히 먼저 와인을 주문한다. 그렇지만 잠깐 실수로 놓칠 때도 있고 충분한 돈을 지불할 수 있는 데 이런 제도를 몰라서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손님도 있어서이다. 물론 그렇게 고가의 와인이 아닐 경우는 그럴 이유가 없다. 

그러나 고가의 와인이 사전 선택된 경우는 식당에 비상이 걸린다. 수석 소믈리에가 와인을 사전 점검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혹시 보관에 문제가 있는지, 침전물이 정상 이상으로 많지는 않은지 등을 고려해서 그 와인에 맞는 디캔터를 고른다. 그리고 에어링 시간과 서빙 온도를 결정한다. 그리고 숨죽이며 고객이 나타날 시간을 기다린다. 예약 문화는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아주 오래전에 프랑스에서 와인에 미쳐 있을 때 읽었던 만화가 있었다. 오래되어 책의 이름이나 작가는 기억할 수 없지만, 내용은 또렷하게 남아있다. 내가 알기론 그 작품의 영향을 받아 일본 작가가 ‘신의 물방울’이라는 만화를 썼고 그게 우리나라에도 번역되어 공전의 히트를 쳤었다. 

프랑스 한 지방의 와인 양조장이 경영난으로 망했다. 그걸 물려받기로 하고 열심히 와인을 연구하던 그 집 아들이 할 수 없이 파리로 흘러드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여기저기 식당에서 소믈리에로 근무하다가 어느 고급 레스토랑의 수석 소믈리에가 된다. 그리고 같이 와인 아카데미에서 공부하다 사귄 여자와 사랑에 빠진다.

그런데 어느 날, 최고의 와인을 주문한 고객이 있었다. 그는 온갖 정성과 최선의 기량으로 모든 준비를 마치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한 시간이 지나고 결국 두 시간이 지나서야 손님이 나타났다. 애타고 초조하게 기다리던 그가 격분해서 그만 이성을 잃고 손님을 총으로 쏘아 버렸다. 그런데 그 손님이 바로 사랑하는 여인의 아버지였다. 노쇼는 이런 비극을 만들 수도 있다. 우리 모두 명심할 일이다.

홍성표(전 한국와인협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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