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햇살 씨는 1991년 의정부에서 태어났고 중학교 1학년까지 서울에서 살다가 춘천으로 와서 원창리에 있는 전인중·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기과에 합격하고 지난해까지 연기자로 활동했으며 다시 춘천으로 이사 온 지는 1년 조금 넘었다. 필자와는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예술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할 사람으로 첫 소개를 받았고 이후 춘천문화재단이 주관하는 일당백 프로젝트에서 다시 만났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배우 활동을 하던 31세의 청년이 ‘숲언니’라는 이름의 유튜브를 운영한다고 한다. 알량한 경험의 한계치를 생각해봐도 지금까지 내가 만난 숲해설가 중 나보다 어린 사람이 있었던가. 인터뷰는 두 번에 걸쳐 필자의 작업실과 이른 아침 문을 연 카페에서 이루어졌다. 

한국예술종합대학 연기과에 들어간 계기가 있을까요? 

연기를 해야겠다고 생각을 한 것은 대학에서 공부하면서였어요. 그 전에 대안학교에 다니면서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는데 친구들과 함께 연극을 만들고 올리는 과정이 꽤 인상 깊고 보람 있었어요. 그래서 연극을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연기도 배우다 보니 힘들지만 재미있더라고요.

공부와 병행한 시간까지 살피면 10년 정도 서울에서 연기자 생활을 한 것이잖아요? 연기자로서의 삶은 어땠나요? 현재는 연기를 그만둔 건가요?

용순, 오목소녀, 열혈사제 등 영화나 드라마, 웹드라마까지 포함해서 대략 20편 했던 것 같아요. 주로 매체 연기를 했어요. 연기 자체는 재밌었어요. 인형극에 참여하거나 대학로에서 여러 실험 작품을 보며 많이 배웠고요. 특히 친구들과 함께 있는 시간은 아주 소중했습니다. ‘우린 학생이니까 이 정도면...’ 그런 게 아니라 모두들 눈높이가 상당했죠. 심도 있게, 밀도 있게 토론하고. 욕심이 많았어요. 반면에 촬영현장은 뭔가 부당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이 많았어요. 조단역배우의 서러움도 있었고, 내 일상을 모두 연기 뒤로 돌려놔야 하는 상황과 겹쳐져서 차츰차츰 연기로부터 멀어진 것 같아요.

스텝이든 연기자든 90%는 자의든 타의든 그만두는 곳이다. 얻은 것에 비하여 잃는 게 많고, 선택한 것은 하나요, 포기해야 하는 것은 전체인 판이어서 그만둘 때는 여한이 없는 게 아니라 기간만큼 상처도 깊은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장햇살 씨에겐 깊은 후회나 회한은 보이지 않는다. 1막이 끝나고 2막이 시작되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이행과정처럼 느껴지는데 더 캐묻기도 어려운 그녀만의 세계일 것이다. 굳이 서울에 있을 필요가 없어진 장햇살 씨는 춘천으로 돌아왔다. 아직 새로운 것이 다가오기 전이다.

숲을 좋아하는 어머니의 영향도 있었을 테고 연기자로 참여한 <식물생활(웹드라마)>의 경험이 영향을 미쳤어요. 그때 식물을 공부하는 것이 재밌었거든요. 아이들 앞에서의 인형극 공연도 관련이 있네요. 특별히 아이들에게 관심이 있다고 생각하진 않았는데 아이들의 반응은 특별했으니까요. 소란스럽지만 열심히 참여하는 거예요. 유아숲지도사 공부를 먼저 시작했고 지금은 전체를 대상으로 한 숲해설사 과정에 있어요. 이게 연기 배울 때처럼 공부하는 과정이 가슴이 뛰는 일이더라고요. 세상에 이렇게 재밌는 일이 또 있구나.

가슴이 뛴다고 하며 그녀는 웃는다. 멀어진 연기의 자리에 숲이 찾아온 것이다. 햇살 씨 세대의 숲해설가를 필자는 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저 또래의 숲해설가가 드문 건 맞아요. 제가 그랬던 것처럼 대부분 곤충을 싫어하고. 유튜브도 그래서 시작한 거죠. 제가 식물. 곤충, 숲에 대해 알아가고 느낀 것들을 공유하고자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조회수를 늘려 돈을 벌려는 아이템이 아니고요?) 거기까지는 아직. 그러려면 더 정성을 들여야죠. 특히 곤충의 세계는... 곤충은 짝짓기할 때 외에는 멈춰있질 않잖아요. 찍기도 어렵죠. 그런데 거미가 집 만드는 광경을 보면 경이로워요. 틈새마다 저렇게 집을 쉽게 지으니까 여기저기서 생존할 수 있구나 싶고. 대발생도 균형을 맞춰가는 과정이라니까... 놀랍고 신기하고 재밌죠.

참고로 숲언니(숲 좋아하는 언니) 유튜브는 지난 4월 개설되어 현재까지 16개의 콘텐츠가 업로드되어 있다. 유튜브 조횟수를 위해 무슨 짓이라도 할 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에 먹고사는 문제에 대한 질문을 일부러 했다. 숲해설로 먹고살 것이냐? 그런 게 아니다. 장햇살이라는 개인과 그 세대 앞에 놓인 매우 현실적이고 일반적인 질문으로 다가가길 바랐다. 다음은 주고받은 여러 대화를 맥락에 따라 답을 중심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숲 공부와 병행해서 연극놀이와 숲체험을 결합한 교육연극에 대해 공부하려 해요. 아이들을 대상으로요. 연기는 그만뒀지만 16년부터 케미가 좋은 친구 4명과 동그라미 공방을 만들어서 ‘핸드메이드 씨어터’를 공연하고 있고요. 공동창작인데 4명의 케미가 너무 좋아서 계속하고 있습니다. 지난해는 신촌극장에서 10여 회 공연했고 올 9월에는 춘천인형극제의 공연작으로도 올라 있어요. 노후는 불안하죠. 그래서 영혼을 끌어 모아서 하는 건 아니지만 주식도 하고, 연금펀드도 해요. 생활하는데 있어서는 소비를 줄여야 하지만 좋아하는 일을 하며 커리어를 쌓아가는 거지요. 그런데 가끔은 이런 것들이 판타지적인 고민 같기도 해요. (왜죠?) 집값이요. 

집값. 올라도 너무 오른 집값. 틈새마다 쉽게 집을 지어 생존하는 거미에 대한 햇살 씨의 이야기가 상기됐다. 집값을 이야기하기 전엔 누구라도 크게 한숨을 쉬어야 할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아킬레스건은 집값과 공정이 아닐까 생각해요.

공정에 대해 확실히 관대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젊은 세대가 어떻게 느끼는지 모르는 채로 이 정도면 공정한 거 아냐? 하는 것이죠. 연기를 같이했던 선배도 우리 땐 굉장히 심했는데 지금은 많이 좋아진 거라고 하더군요. 그게 소용 있는 말은 아니잖아요. 그렇다고 절망하는 건 아니고요. (웃는다) 집값은, 춘천은 그래도 비빌만한 언덕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최근 브랜드 아파트들이 지어지고 값이 훅 올라서 당황스러워요. 직장인이 아닌 제가 집을 마련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그렇다고 포기는 아니고요. (또 웃는다)

숲언니는 인터뷰 내내 자신의 발언이 개인을 넘어 세대의 표징으로 읽히는 걸 경계했다. 당연히 그래야 할 것이다. 그러나 어떤 독자가 그 이상을 보려 한다면 그것 또한 온전히 독자의 몫이 된다. 10년 만에 돌아온 춘천에 대한 소감을 물었다. 예전에 좋았던 풍경을 다시 볼 때는 실망하는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어디든 도시화가 진행되고 춘천도 예외는 아닐 테니까. 숲언니 장햇살 씨의 마지막 대답 속에는 그녀가 현재 걷는 길과 그 길에서 이어진 길이 보인다. 우리 중 누군가는 그 길에서 만나질 것이다.

춘천이 변화하려는 시기에 와서 저는 운이 좋았다고 봐요. 세계인형극축제 관련이나 일당백 같은 지원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많이 생겼어요. 저는 어찌 보면 외지인이잖아요. 커먼즈필드 옥상 텃밭 사업이나 도시가 살롱, 동네 책방을 통해 사람들과 연결되기도 하고요. 10년 만에 전인고등학교 쪽에 가 봤어요. 나즈막한 산들에 밭과 논이 둘러싸여 있고, 작은 냇가도 흐르고, 큰 은행나무 아래 평상이 있고 그 아래서 노을 지는 것을 보는데 여기가 원래 이렇게 좋았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었어요. 새소리도 너무 다양하고 공부할 것이 천지에 있었어요. 그때는 그냥 공기 좋은 시골이려니 했었는데. 이러한 것들을 계속 찾고, 공부하고 나누고 싶어요.

조창호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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