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에 선사시대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여러 곳에서 확인되고 있다. 그 중, 처음으로 춘천에 인류가 살았던 구석기시대의 인간이 생각을 가지고 변형시킨 석기가 확인됐다. 주로 석영암, 규암, 반암, 화강암이다. 그리고 석기를 제작하던 터가 확인되기도 하지만 흘러온 것들이 쌓인 곳이 확인되기도 한다.

인류가 석기를 처음 사용한 시기는 대략 300만년 전이라고 한다. 그리고 석기를 사용한 인류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 호모 하빌리스, 호모 에렉투스,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이다. 이들이 제작한 석기를 유럽에서는 올도완(Oldowan), 아슐리안(Acheulean), 무스테리안(Mousterian) 석기로 분류한다. 

춘천 서상리유적 (① 유적 전경, ② 유적 층위, ③ 석기 출토 상황, ④ 부합석기)     출처=예맥문화재연구원, 2011,《춘천 서상리유적》

 이후, 돌날 제작 기법이 호모 사피엔스에 의하여 발명되는데 이 기법은 하나의 몸돌에서 수많은 날을 제작하여 도구를 만들 수 있는 첨단 기술이다. 이 기법이 나타나는 시기를 후기 구석기시대라고 한다. 그런데 춘천에서는 이러한 돌날을 만들 수 있는 돌감(니암, 유문암, 흑요석 등)을 구하기가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에 분포하는 구석기시대 유적

한반도에서 구석기시대 유적은 일제강점기에 두만강 유역에 위치한 함경북도 종성군 종성면 동관리에서 처음으로 확인되었다. 1933년 철도공사를 하던 도중에 쥐의 이(齒)가 발견되고 이듬해 모리타메조(森爲三)에 의해 발굴되어 여러 종의 포유류 화석과 고인류(古人類)의 유물 2점이 출토되었다. 이 유적은 동관진유적(潼關鎭遺蹟) 또는 연대봉(煙臺峰)유적으로 알려져 있다.

남북 분단 이후, 북한에서는 1962년 함경남도 웅기군 굴포리 서포항에서 확인하였다고 한다. 남한에서는 1964년 공주 석장리유적, 1978년 연천 전곡리유적이 확인되었다. 그런데 두 유적은 한국 고고학자가 아닌 외국인이 처음 확인한 유적이다. 이후, 충주댐 수몰 지구를 시작으로 각종 개발 사업에 따라 남한 전역에서 확인되고 있다.

춘천의 구석기시대 유적

춘천에서는 한덕리유적, 산수리유적, 월송리유적은 지표 조사, 금산리유적, 거두리유적, 서상리유적, 만천리유적이 발굴조사를 통하여 확인되었다.

서상리유적은 인류가 석기를 제작하던 흔적이 확인되었다. 유적은 신매리에서 서상리로 가는 국가지원지방도 70호 선상에 위치한다. 해발 90m 내외의 하안단구에 형성되었는데 유물은 지금의 북한강 수면과 비교하면 약 20m 내외의 높이에서 확인된다.

층위는 지표 교란층-황갈색 점토층-적갈색 점토층-황갈색 사실점토층-황색 사질점토층-황등색 점토층-모래자갈층으로 구성되어 있고 적갈색 점토층에 대한 OSL연대측정 결과, 48,000±4,000B.P.로 측정되었다. 이 층을 중심으로 그림(③)처럼 석기를 만들던 과정에서 생긴 격지가 확인되었고 이것들을 다시 접합(④) 한 것이다. 따라서 이 부분이 석기를 제작하던 터이다.

하지만, 이 석기를 제작하던 인류가 누구인지는 알 수 없다. 춘천에서 기대하기 어렵지만 적어도 한반도에서 신뢰할 만한 고인류화석의 발견이 기대된다.

심재연 (한림대학교 한림고고학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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