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는 고통이다. A가 증대하면서 지상을 가득히 채운다. A는 고통, 나는 고통의 남편. A는 내 몸을 파고들기 시작한다. 밤이다. A와 나는 관계로부터 탈출을 시도한다. A는 고통, 나는 고통의 남편, 어떻게 이혼할 것인가 새벽에. A와 나는 어떻게 결혼을 취소할 것인가 대낮에. 나는 A를 없애려 권총을 만든다. 물론 나의 권총에는 총구가 없다. 죽여야 할 놈은 이미 시체이기 때문이다. 죽여야 할 놈은 바로 나 아아 시체여 시체여 시체여. 밤에도 낮에도 지상을 가득 채우는 아름다운 A는 결코 죽을 가능성이라곤 없다. A는 고통, 나는 고통의 남편, 어떻게 이혼할 것인가.  - 이승훈 시집 《환상의 다리》 일지사, 1976  중에서

이승훈 시인은 스스로 시론을 가지고 시 행로를 정확히 밝혀 놓았기에 그의 시가 어렵게 보여도 조금만 들여다보면 의외로 쉽게 읽힌다. 그의 시는 수학공식을 보는 거 같기도 하다. 그만큼 명료하다는 것이다. <A와 나>에서 A는 고통이다. 그러니까 고통이 증대하면서 지상을 가득 채운다. 우리는 고통을 느끼면 고통에만 집중한다. 세상 모든 것이 고통으로 일그러진다. 그러니 세상은 고통으로 가득 찰 수밖에 없다. A는 고통이고 나는 그의 남편이다. 밤이면 부부 관계하듯 고통이 내 몸속을 파고든다. 나는 고통으로부터 달아나려 하나 한편 고통은 그만큼 매력적이다. 고통은 밤에도 새벽에도 낮에도 가리지 않고 나를 옴짝달싹 못하게 한다. 여기서 고통은 집착의 모습을 보여준다. 나는 고통과 이혼하려 하고 고통을 죽이려 한다. 고통은 사실 나다. 내가 살아 있으므로 느끼는 것이니 내가 죽어야 고통도 사라진다. 내가 고통을 느끼는 것은 살아 있다는 증거다. 그러니 고통과 뒤엉켜 사는 것이고 아름답다는 것이다. 여기서 고통은 나를 다시 인식시킨다. 이승훈 시의 여정은 나로 시작해서 너로 발전하고 너에서 그로 나아간다. 나도 너도 그도 결국 나라는 것이다. 

한승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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