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입구에 난데없이 강원도 정선 함백산의 고사한 전나무가 누워 있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2021년 6월 8일부터 8월 8일까지 진행된 <기후미술관-우리집의 생애>의 전시의 도입부이다. 잘려진 채 놓인 나무의 주검이 전하는 울림은 조용하지만 강렬하다.

전시는 기후위기 속에 놓인 지구라는 생태계를 ‘집’이라고 보고 ‘기후변화로 죽어가는 집’, ‘짓고 부수는 집’, ‘생존을 돕는 집’, 총 3개의 섹션으로 나누어 구성되었다. 한라산에서 백두대간까지 집단으로 고사하는 침엽수에 대한 기록에서부터, 플라스틱으로 오염된 바다, 남극의 해빙, 서식지를 잃은 동물들…. 기후위기 속에 지구 환경과 생태계 파괴에 대한 문제를 직시하고 담아내려는 노력이 역력한 전시였다. 

그러한 주제성을 담아낸 작품들보다 더 새롭고 놀라웠던 시도는 따로 있었다. 비닐 시트지 등으로 디자인되는 벽면의 전시 그래픽 대신 수천 장의 A4 이면지를 이어 붙여서 구성한 기획자의 집요함이었다. 가벽을 사용하지 않고, 최소한의 조명과 버려진 액자 등을 사용한 시각 설치물 등은 전시라는 예술 행사의 방식 자체를 재고하는 화두를 던지고 있었다. 

춘천의 대표적인 축제인 마임축제 역시, 환경친화적인 방식을 도입하여 집합이 금지된 코로나19 시대에 새로운 형태의 축제로 진화하고 있다. <지구의 봄>이라는 주제로 봄 여름 가을 겨울 4개의 시즌으로 찾아가는 마임 공연 등 다양한 작은 축제들을 구성하였다. 특히 현수막, 배너 등 일회용 홍보물이라는 손쉬운 경로를 버리고, 노동이 필요한 방식으로 폐현수막 뒷면에 손글씨로 일일이 그린다거나 칠판 게시판을 재사용한 홍보물도 눈에 띈다. 폐기물이 될 수도 있던 이전 축제의 물건들을 적극 활용하고, 다시 사용할 수 있도록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는 쇼룸은 향락과 일회적인 소비의 장이기도 했던 과거의 축제가 차지했던 영광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5월에 오픈된 부산현대미술관에서도 <지속가능한 미술관>이라는 이름으로, 제로웨이스트에 도전한 전시가 진행 중이다. 재사용 가능한 거친 나무판을 가벽으로 하고, 전시설명문은 캘리그래퍼의 손글씨로 대체하였다. 전시를 기획한 최상호 학예사는 미술관의 깨끗한 흰 벽에 전시된 작품들 이면에는 엄청난 양의 폐기물이 존재하며 아름다움의 공간인 미술관 역시 환경 파괴적인 행위가 일어나고 있음을 경고한다.

불과 20만 년 전에 등장한 현생 인류는 46억 년을 버텨온 지구를 순식간에 파괴해버렸다. 한 생물 종이 지구 환경 전체를 바꿔놓은 지질 시대를 이르는 말인 ‘인류세(人類世)’는 네덜란드 대기과학자 파울 크뤼천이 2000년 처음으로 제안한 개념이다. 백두대간의 푸른 숲에 있어야 할 전나무의 주검 앞에서 우리는 인류가 스스로 초래한 지구 생태계의 위기를 직시하고 총체적인 삶의 방식 전환을 다짐해야 한다. 인류세의 끝을 미룰 수 있는 것은 인류 자신이다.

정현경 (큐레이터)

 

저작권자 © 《춘천사람들》 - 춘천시민의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