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일 기자

빨갛게 잘 익은 수박을 나눠 먹으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하는 가족들, 여름 하면 떠올려지는 한국 서민 가정의 대표적인 풍경이다. 하지만 점점 보기 힘든 풍경이 돼가고 있다.

수박 한 통 3만원, 최근 폭염과 관련해서 눈에 띄는 이슈였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8월 현재 수박 1통의 평균 소매가격은 2만6천42원이다. 7월의 1만6천577원보다 57.1% 올랐고, 지난해 8월의 1만9천213원보다 35.5% 높다. 

참외 가격도 급등했다. 참외(10개 기준) 가격은 8월 현재 1만6천754원으로 지난 7월 및 지난해 8월과 비교해 각각 26.8%, 15.5% 비싸다. 사과의 경우 후지 10개의 가격이 3만2천945원으로 전년 대비 19.8% 올랐고, 신고 배 10개의 가격은 5만3천764원으로 지난해 대비 51.6% 비싸다. 

정부, 지자체, 농민 모두 아는 것처럼 기후변화가 첫 번째 원인이다. 여름이 오기 전 농식품부는 여름철 농업재해 대책을 발표하지만 폭염과 태풍, 집중호우로 인한 농업피해는 해마다 반복된다. 농업에서 빅 데이터를 활용해 날씨를 예측하고 재배하는 날씨경영, 과학기술을 도입한 스마트팜 등이 이미 널리 알려지고 보급되고 있지만 영세하고 고령화된 대다수 농촌에는 먼 나라 이야기이다. 

코로나19로 인한 소비감소와 노동력 부족도 원인이다. 소비감소로 재배면적이 줄어 수확량이 줄었는데 기후변화로 직격탄을 맞으니 가격이 급등한다. 또 일손이 부족해서 제때 수확을 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정부는 올해 상반기 전국 자치단체의 신청을 받아 외국인 계절 근로자 5천3백 명을 배정했지만 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해 실제 입국한 비율은 7.9%(419명)에 불과했다. 일을 할 수 있는 내국인들은 정부와 지자체의 공공일자리 사업으로 몰린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는 공감대도 크고 정부 지자체의 해결 의지도 적지 않기 때문에 그나마 개선의 여지가 있다.

큰 문제는 수박 3만원의 이윤이 농민의 주머니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미 아주 오래전부터 누구나 알고 있지만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유통구조 때문이다. 한국의 복잡한 유통구조를 개선하지 않으면 기후위기를 잘 대처하고 일손이 넘쳐난다 해도 대다수 농민들은 부자가 되기 어렵다. 

최근 폭염으로 고생하는 농민을 만났을 때 들은 한 농업협동조합 상임이사의 말이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는 오랜 시간 동안 국내외 연구원으로 일하다 한국농업을 살리겠다는 거창한 꿈을 품고 귀국해서 농가 컨설팅을 하던 중 정성을 쏟아 재배한 가지 1상자(50개)가 500원에 팔리는 걸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걸 해결해보려고 협동조합을 만들어 소비자를 직접 만나고 온라인 판매도 하며 동분서주하고 있다.

올해도 유사한 일이 벌어졌다. 지난 7월 8㎏들이 애호박 한 상자가 500원까지 떨어지자 농협 강원지역본부는 농림축산식품부 승인 아래 지난 7월 말 산지 폐기를 진행했다. 총 300톤의 산지 폐기 물량 중 애호박 최대 주산지인 화천군에 배정된 물량은 213톤으로 가장 많았다. 산지 폐기 소식이 언론을 통해 전국에 알려지자 하루 사이에 112톤의 애호박 주문이 들어왔다. 소비자들이 직접 연락을 해 온 것이다.

8월 현재 한 대형 마트 온라인몰에서 애호박은 개당 약 2천원이다. 지난 7월 화천산 애호박을 네상자 살 수 있는 셈이다.

오래전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생산자와 소비자의 직거래 등 농산물 유통 과정을 간소화하면 해결될 수 있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원인도 해법도 모두 알고 있지만,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다. 재해와 질병보다 풀기 어려운 것이 이해가 복잡하게 얽힌 사람의 일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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