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평산 15경

춘천에는 역사 문화적 의미를 담고 있으면서 아주 빼어난 자연경관도 갖춘 곳이 여럿 있다. 그 가운데 한 곳을 선택하라고 하면 망설임 없이 청평산을 꼽을 것이다. 춘천에 사는 사람이라면 한두 번은 청평산 청평사에 다녀왔을 것이고, 산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청평산을 등산했을 것이다. 특히 청평산 청평사로 가는 길이 다양하고 이색적이라는 점에서 또 다른 매력이 물씬 얹혀 있다. 

 청평사에 가는 방법으로는 소양호 뱃길을 이용하거나, 차량을 이용하거나, 등산을 통해서 갈 수 있다. 이렇게 다양한 접근 방법을 지닌 역사 문화 관광지가 또 있는지 모르겠다. 청평산에는 대표적인 청평사 외에 자연 경치 좋은 곳이 여럿 있다. 

 조선 시대 선비들은 청평산의 경치 좋은 곳을 골라서 8경이나 10경 등을 정하였다. 특이하게 구사맹(具思孟:1531~1604)은 무려 15곳을 지정하고 각각에 한 수씩 시를 짓기도 하였다. 

 구사맹이 뽑은 청평산 15경은 폭포(瀑布), 영지(影池), 서천(西川), 너럭바위[廣石:광석], 선동(仙洞), 식암(息庵), 물레방아[水碓:수대], 이끼 낀 비석[苔碑:태비], 척번대(滌煩臺), 진산탑(鎭山塔), 청평사(淸平寺), 부용봉(芙蓉峯), 견성암(見性庵), 양심암(養心庵), 문밖 배꽃[門外梨花:문외이화]이다. 

구송폭포는 쌍둥이 폭포

구송폭포는 여러 개의 이름으로 불렸다. 문헌 기록으로 보면 이층폭포, 이단폭포, 쌍폭, 형제폭포, 구송폭포 등으로 불렸다. 다산 정약용은 고증학의 대가답게 현재 구송폭포로 불리고 있는 폭포를 구송정폭포로 이름하고 아래에 있는 폭포를 경운대폭포로 명명하여 두 폭포를 구분하였다. 

 현재 위쪽에 있는 폭포만을 구송폭포로 부르고 있으며 아래에 있는 폭포는 사실 이름 없이 방치되고 있다. 게다가 한때 이름이 와전되어 구성폭포(九聲瀑布)로도 불렸었다. 구송폭포의 이름이 아래에 있는 폭포의 너럭바위 주변에 아홉 그루의 소나무로 인해 붙여졌다는 점에서, 아래 폭포까지를 포함하는 지명 방식이 필요하다.

골짜기에 들어서 산길 시작되자  入谷幽事始

말안장을 떼어 가마에 얹었네  肩輿卸鞍馬

스님이 오래된 단을 가리키니  僧指太古壇

물 흐르는 큰 소나무 아래로다  水流長松下

그늘져 비추는 아름다운 모습  蔭映相爲美

앉자마자 풍경 쏟아져 들어오네  少坐意已寫

두 곳 폭포에서 샘물 뿜어내며  噴薄兩疊泉

바람은 산속 나무를 휘돌아가네  回風山木亞

비에 젖은 푸른 이끼 벽 촉촉하고  雨蘚翠壁滋

이슬 내려 푸른 단풍잎 씻기네  露葉靑楓灑

위의 시는 농암 김창협(金昌協:1651~1708)이 구송대에 머물며 지은 것이다. 시인이 도착한 구송대는 청평산 여정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곳으로 청평산의 얼굴과 같다. 절의 입구까지 마중을 나온 스님도 청평산 구송대를 가장 먼저 소개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단으로 이루어진 구송폭포가 바라다보이는 구송대에 앉자마자 주변 풍경이 시야로 쏟아져 들어온다. 두 폭포를 사이에 두고 골이 깊게 형성되어 있어 바람이 불면 폭포 주위의 나무를 휘돌아나간다. 폭포에서 떨어진 물은 주변의 이끼가 낀 벽을 촉촉하게 적시고, 푸른 단풍잎에는 이슬처럼 뿌려져 잎을 깨끗하게 씻어낸다. 

청평산의 얼굴 구송폭포

이 층으로 이루어진 구송폭포는 청평산의 제일가는 경치이며 속세와 경계를 이루는 별천지 입구이다. 구송폭포에서 떨어지는 폭포수는 나그네의 심신을 완전히 씻겨주고 복잡한 현실을 잊도록 해준다. 청평산 구송폭포는 별천지로 들어가는 입구이면서 청평산의 얼굴이다. 쌍둥이 폭포인 구송폭포가 외짝으로 남지 않도록 세심한 관심과 홍보가 필요한 시점이다.

 

허준구 (춘천문화원 춘천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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