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욱(작가, 춘천문인협회 회원)

우여곡절 끝에 강원대학 국어교육과로 진학했다. 

대학에 가면 문학회 같은 모임이 있을 테고 그런 모임에 가입해서 즐거운 대학생활을 할 수 있으리라 믿었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개교 2년째인 대학이라 그런지 문화적인 면에서는 불모지였다.

격주로 발행되는 강대학보에 짤막한 콩트를 써서 발표하는 정도의 심심하기 짝이 없는 대학 1년생의 어느 날, 먼 훗날 여류작가가 된 분을 만나게 되었다. 바로 ‘박계순’ 선배다.

당시 박 선배는 서울의 숙명여대 무용과를 다니다가 고향 춘천으로 내려와 강원대 모 과로 학사 편입한 직후였다. 나보다 3년 선배다.

강대학보에 실린 내 콩트들을 보고서 문학에 흥미를 느껴, 과분하게도 먼저 내게 대화를 청했다. 같은 교양강좌를 듣고 있어서 낯은 익었던 터. 우리는 잣나무가 양쪽으로 늘어서 있는 교정의 길을 걸으면서, 화사한 늦봄의 햇살 아래 문학에 관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자리를 옮겨 시내 중앙로에 있는 지하다방 ‘남강’에서 커피 마시며 얘기를 이어나가기도 했다. 

고전무용을 했던 박 선배로서는 ‘허구의 세계를 만들어내고 이끌어가는 소설’이란 장르가 무척 신기했나 보다.

얼마 후 여름방학이 왔고 개학하면서 2학기가 됐다. 그런데 박 선배의 모습을 더는 캠퍼스에서 볼 수 없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박 선배는 1학기를 마치자마자 자퇴해 버렸단다. 하긴 고전무용을 전공했으니, 그 비슷한 과조차 없는 강원대에서 박 선배는 적응하기 힘들었을 터. 어쨌든 박 선배와 나의 인연은 1970년 강원대 1학기, 늦봄의 두어 번 만남이 전부인 것 같았다.

그 후 반세기 가까운 세월이 흐른 2016년 7월 중순의 어느 날이다. 나는 생각지도 못하게 박 선배의 전화를 받았다. 박 선배가 ‘봉의산 가는 길’ 카페에 갔다가 열람대에 놓인 내 첫 작품집 ‘숨죽이는 갈대밭’을 보고는 ‘이 작품집의 작가 이병욱이, 혹시 내가 강대 다닐 때 만난 그 이병욱인가?’ 하는 의문에 전화한 것이다. 

반가운 전화통화로 나는 박 선배의 장편소설‘수’ 출판기념회에 초대까지 받았다. 

7월 19일, 후평동에 있는 한 횟집에서 열린 ‘수’ 출판기념회.

춘천 지역의 쟁쟁한 문화예술인들이 동석한 자리에서 나는 박 선배의 위상을 실감했다. 박 선배는 1995년에 제1회 김유정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주목받는 여류작가의 길을 걷고 있었던 것이다. 1995년 즈음에 나는 밤늦게까지 근무하는, 고단한 모 고등학교 교사였다. 학교 밖 세상 소식은 전혀 알 수 없었던 것이다.

2016년 7월의 ‘수’ 출판기념회 이후 박 선배와 나는 1년에 두어 번꼴로 만나서, 소설을 중심으로 한 대화를 편히 나눈다. 

지난 1월 어느 날에는 선배가 ‘춘천문학 32호’에 실린 내 소설 ‘그 여자 얘기’를 읽고서 간단하게 소감을 문자로 보내왔다.

“그 여자 얘기. 글맛에 홀려 홀연히 잊혀졌던 시공간에서 그리운 인물들과 해후한 여운이 남아 있는 상태. 내겐 참 샘나는 소설. 박계순.”

참고로 박 선배는 웬만해서는 문자를 보내는 것 같은, SNS를 하지 않는 성격이다. 

 

  박계순

1995년 제1회 김유정 신인문학상 수상. 

2006년 첫 단편소설집 ‘춤추는 무당벌레’. 2016년 첫 장편소설 ‘수’. 2021년 두 번째 장편소설 ‘찬 바람 더운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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