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라디오방송 최초의 DJ

뮤직홀은 그 이후에 시대백화점 1층의 ‘라스카라’, 광화문의 ‘아카데미’까지 명맥을 이었고, 그 외의 뮤직홀로는 삼각동 입구의 ‘아폴로’, 명동극장 옆 골목 2층에 ‘시보네’, 동화백화점(현재의 신세계백화점) 5층에 있던 ‘동화음악궁전’이 축소되어 명동으로 이전한 ‘동화음악실’ 등이 있었다.

뮤직홀에서 디스크자키를 개발하여 스카우트 열풍의 주역이 되었던 최동욱은 동아방송의 프로듀서로 입사 후 1년 반 뒤인 1964년 10월 5일에 ‘탑 튠 쇼(Top Tune Show)’를 통해 한국방송 최초로 전문 디스크자키의 서막을 열었다. (그 후 50년이 지난 2014년 10월 5일 한국방송디스크자키협회는 그날을 기념하기 위해 ‘DJ의 날’을 선포하기에 이른다.) 

그로부터 1년 뒤인 ‘1965년 MBC에서는 동아방송에 대응해 ‘뉴월드’ 김태관 사장의 천거로 이종환을 ‘탑 튠 퍼레이드(Top Tune Parade)’ DJ로 앉혔고, 다시 6개월 후에 라디오서울(후에 TBC라디오)에서 성우 피세영을 ’뮤직 텔스타(Music Telstar)’의 DJ로 발탁하여 이른바 ‘탑튠(Top Tune) 3파전’ 시대를 열었다.

1965년에는 KBS에서 동아방송 아나운서로 옮겨온 유영옥이 VUNC(유엔군총사령부 방송)에서 1시간짜리 프로그램 ‘더 퍼스트 쇼(The First Show)’를 진행하면서 한국방송 최초의 여성 디스크자키가 되었다.

음악다방 변천사

- 뮤직홀 시대에서 뮤직살롱 시대로

음악감상실은 다방류의 영업허가 조건이기 때문에 상설무대의 라이브연주가 금지되어 있었다. 이런 취약점을 보강한 영업 형태의 출현이 이른바 ‘뮤직살롱’이었다. 퇴계로 2가 콘티넨탈호텔 7층(후에 2층)에 자리한 뮤직살롱이 그 시초였다. 미 8군 군예대(軍藝隊)에 출연하는 연주자와 가수들이 주 무대를 꾸몄다. 사회는 이석이 단골이었고, 최희준, 위키리, 박형준, 유주용 등 ‘4클로버스’와 ‘모니카유’ 등이 자주 무대에 섰다. 빅밴드로는 ‘민들레악단’이 주 무대를 꾸몄는데 이 밴드에 알토색소폰 연주자 이백천(후에 경음악 평론과 방송사회자로 활동)이 끼어있기도 했다.

이어 미도파백화점 4층의 ‘미도파캬바레’가 낮 시간에 ‘미도파살롱’을 열면서 최동욱이 첫 사회자로 무대에 섰고, 김태웅(지미)이 보조 사회를 맡았다. 후에 숙명여대 재학생 박인희가 바톤을 이어받아 사회를 맡았다. 이곳에서 최동욱은 매주 토요일마다 ‘3시의 다이얼’ 생방송을 진행했는데 매회 입추의 여지가 없었고, 이를 본떠 CBS가 매일 낮에 ‘정오의 휴게실’ 프로그램을 설정하고 위키리(작고)를 고정사회자로 세우기도 했다. (계속)

DJ 최인(한국방송디스크자키협회 정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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