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강원도를 방문한 한 대선후보의 기자간담회에서 일어난 일이다. 한 기자가 강원도가 전체 유권자의 3.3%밖에 되지 않는다며, 일종의 계륵이라는 표현을 쓰며 강원도와 관련한 공약에 관해 질문했다. 물론 후보자가 계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답변을 이어나갔지만, 질문의 의도는 효율성의 측면에서 홀대받고, 소외되는 지역과 그에 관한 정책에 묻고 싶은 것으로 여겨진다. 

지역이 소멸하고 있다는 진단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리고 비록 강원도뿐만 아니라 서울과 수도권을 제외한 거의 모든 지역을 관통하는 문제이다. 그 문제의 시작은 인구의 감소에서 비롯된다. 인구감소는 기존 주민의 유출도 문제이거니와 새로운 인구가 충원되지 않기 때문이다. 출산율 감소와 노령인구 증가는 국가 전체의 문제이지만, 특히 지역에서는 공동체의 소멸이라는 위기가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그나마 남아있는 지역도 늙어지고 있어 언제 사라질지 모른다. 이것은 그 지역의 사회 전반에 걸쳐 일어나는 복잡한 문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예측 가능한 미래에 대한 대책이나 정책은 없다. 소수가 배려받지 못하고 차별받는 것은 다수의 논리 때문이다. 여기에는 효율성이라는 원리가 그 기저에 깔려있다. 

교육의 영역에서도 효율성의 원리는 그대로 관철된다. 인구감소의 여파는 취학아동의 감소로 이어져 이미 소규모학교의 통폐합을 가져오기도 했다. 대안 찾기에 나선 강원도교육청은 작은 학교를 살린다는 명목으로 재단을 설립했지만, 아무런 성과도 없이 예산만 낭비한 채 최근에는 재단이 공중분해 되기에 이르렀다. 결과적으로 교육청은 소규모학교 통폐합도 막아내지 못했다. 그로 인한 교원 감축에 대해서도 아무런 대안을 마련하지 못했다. 효율성에 근거한 중앙정부의 획일적 정책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한다. 

학교 통합과 함께 교원 감축 정책 역시 효율성에 기반하고 있다. 강원도에만 해당하는 사항이 아니지만, 교육부는 이미 유치원과 초등학교 임용교사를 줄이기로 한 데 이어, 올해 공립교원 배정을 통해 중등교원 규모도 강원도에서만 121명 줄이기로 했다. 예고된 이런 정책에도 교육청은 아무런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 채 교육부의 정책을 비판하고 성토하는 것으로 그친다. 교육감은 “학생 안전과 개별화 교육을 위해서 학급당 학생 수를 20명 이하로 줄이자는 사회적 요구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학생 수가 감소하니 교원도 줄여야 한는 경제 논리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고 한다. 강원도의회도 중등교원의 정원감축을 반대하는 성명서를 냈다. 교원단체들 또한 비슷한 입장문을 발표했다. 반대만 있고 대책은 없다. 반대 의견을 내는 것만으로는 바꿀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 그뿐만 아니라 교육현장의 비능률과 비효율을 비판하는 여론은 교육청의 주장에 차가운 시선을 보낸다. 

그러면 그 경제 논리라는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경제적으로 이익이 되느냐의 여부를 최우선으로 삼는 원리를 의미하는 듯하다. 달리 표현하면 효율성(efficiency)의 논리이다. 경제학에서의 효율성은 최소한의 투입으로 최대의 산출을 기대한다, 그러나 효율성은 어떤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변화하게 하는 데 최적의 방법을 찾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이런 최적의 방법에는 경제 논리, 즉 돈의 논리만이 고려되어서는 안 된다. 효율성의 논리에서 경제만이 강조되면 사회는 소멸한다. 

강원도 교육이 당면한 소규모학교의 통·폐합, 교원 감축 정책뿐만 아니라 춘천시의 환경사업소 외주문제, 시내버스 노선개편 문제 등이 모두 효율성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정책들이다. 그러나 효율성은 돈이 덜 들어가는 경제 논리가 아니라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전제한 개념이어야 한다. 효율성의 논리가 강하게 작동되는 사회에서는 경제만 있고, 사회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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