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쓰는 기획자, 윤한

효제초등학교 앞 골목길에 있는 로컬 카페 ‘소양하다’에서 음료를 주문하고, 기다리고 있노라면 컵 받침에 아로새긴 글귀가 눈에 들어온다.

“소양강 위로 안개가 핀다.

새벽은 고요하게 젖어들고

우리는 조금도 울지 않는다.”

안개 자욱한 소양강의 풍경을 묘사한 문장은 공간 주인장인 윤한이 썼다. ‘소양하다 주인장’과 더불어 ‘소설 쓰는 기획자’. 춘천의 콘텐츠와 문학을 버무린 공간에서 자신만의 속도와 방식으로 소통하는 사람이다.

소녀, 영화와 문학을 만나다

논과 밭이 남아있던 옛 학곡리 버스 종점. 그곳에서 메뚜기를 잡아 사이다병에 넣어 놀던 춘천 토박이 윤한은 이사와 함께 시내 생활을 시작했다. 시골보다 시내가 낯설었다는 천진한 소녀가 문학에 빠지게 된 계기는 춘천여고에 진학하면서부터였다. ‘아틀란티스’라는 영화제작 동아리에 들어갔는데, 그곳에서 난생처음 시나리오를 쓰고, 독립영화를 찍으며 ‘대한민국 청소년 미디어 대전’까지 참가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영화에 흥미를 느낀 윤한은 시간이 날 때마다 고전 영화를 찾아봤고, 치열했던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도 영미문학 도서를 탐독했다. 공부만으로도 벅찬 시기에 문학책에 빠진 학생이라 주변에서는 적잖이 걱정했지만, 호기심과 열정이 이끈 일은 누구도 말릴 수 없었다. 

“영화의 꿈을 갖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과에 진학했어요. 시나리오 창작도 할 수 있는 영화감독이 목표였는데, 막상 공부해 보니 영화보다는 문학이 적성에 맞더라고요. 대학에서도 극 창작 동아리 활동을 하며 여러 편의 희곡을 쓰고, 졸업작품도 희곡을 발표했죠. 영화에서 시작했는데, 공부를 하다 보니 연극이 주는 생동감이 정말 좋았어요.”

새로운 길을 열어준 관광 분야

대학 생활 중 창작활동을 했지만, 지금과는 다른 길을 걸어보고 싶다는 마음에 남들보다 긴 휴학 기간을 보냈다. 새로운 경험, 다른 세계를 만나는 경험은 뭐니 뭐니 해도 여행이 제격인 것 같았다. 그러나 학생 신분이기 때문에 돈이 부족했고, 여행자금을 벌러 들어간 여행사에서 의외의 길을 발견했다. 

“춘천의 한 여행사에서 사무보조로 일을 시작했죠. 항공, 호텔, 여행 일정을 계획하는 일부터 해외여행 인솔자로 발을 넓히며 시야가 넓어졌어요. 외국어를 배우고, 특정 국가에 품었던 편견도 사라졌죠. 2년 정도 일하다 복학했는데, 그렇게 쌓은 다양한 경험은 글 쓰는 사고를 확장해주기도 했죠.”

여행사에서 일한 경험으로 관광 분야에 더 깊은 관심이 생겼다. 당시 강원대학교에 다니는 동생의 제안으로 졸업 후에는 강원대학교 대학원 관광경영학과에 진학했고, 그곳에서 인도네시아, 라오스, 중국, 대만 등 여러 국가의 친구들과 교류하는 뜻깊은 시간을 보냈다. 

고향 춘천에서 경험한 업무와 새로운 공부는 늘 해외로 향했던 윤한의 시선을 안으로 돌려놓았고, 내가 사는 지역의 관광 산업을 다시 바라보고, 발견하고 싶다는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했다. 이후 윤한은 관광두레 청년 프로듀서에 지원해 3년 동안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관광두레에서 만난 송미 PD님은 정말 저에게 큰 멘토예요. 지역의 다양한 관광산업 사례를 공부하고 제안할 때에도 그 안의 본질과 지속가능성을 생각하게 해주셨죠.”

문학과 커뮤니티의 가능성을 발견하다

관광두레에서 인연을 맺은 송미 PD는 윤한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남을 위한 일이 아니라 나를 위한 일, 그리고 분명한 목적이 있어야 한다는 걸 알려준 선배다. 공간을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을 때에도 윤한은 그 말을 떠올렸다. 본질에 명확하게 대답할 수 있는지를.

“도시가살롱에 처음 참여하며 글쓰기 프로그램을 운영했는데, 너무 재미있었어요. 단지 재미를 넘어 내 재능에 대한 가능성, 참여한 사람들의 가능성, 커뮤니티와 공간의 가능성을 발견했죠. 함께 글을 쓰는 활동이 내가 사는 춘천에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로컬 카페를 창업한 지 어느덧 6개월이 지났다. 주인장 윤한은 사람들이 ‘소양하다’를 통해 바쁜 일상에 잊고 있었던 문학을 잠시 만나거나, 직접 작가가 되어보는 경험을 하길 바란다. 그렇기에 함께 글 쓰는 모임은 물론, 《무진기행》과 함께 춘천 산책하기, 《죄와 벌》과 로컬 술 빚기 같은 문학작품과 함께하는 다채로운 프로그램도 늘릴 계획이다. 문학과 여행, 지역의 콘텐츠 무엇을 어떻게 연결할 수 있을지 상상하는 것도 즐겁다.

가장 좋아하는 것, 가장 잘하는 것으로 고향인 춘천에서 윤한다운 것을 만들어간다. 그렇게 결합한 콘텐츠는 어디에 있어도 반짝반짝 빛이 난다. 누군가는 문학을 하면 돈이 안 된다고 하지만, 그건 모르는 일이다. 다만, 분명한 건, 다음을 모르는 사람이 가장 용감하다는 것! 지역을 읽고, 문학을 잇는 청년, 소설 쓰는 기획자 윤한이 그릴 미래에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이나래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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