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커서 뭐가 될 거니? 의사? 경찰? 선생님?’ 어릴 적 늘 들었던 말이다. 돌이켜보면 그 말은 세상의 기준에 우리를 끼워 맞추도록 만든다. 나도 그랬다. 10대 때는 어서 스무 살이 되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스무 살은 성인이니까 자유로워질 줄 알았다. 

고등학교 졸업 후, 나는 내 힘으로 돈을 벌고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돈을 쓰고 싶었다. 하지만 아르바이트 자리를 얻기도 쉽지 않았다. 

부모님과 우리 사회가 그려준 나의 20대 모습은 휴학 없이 스트레이트로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하는 것이었다. 그리곤 저축을 잘해 결혼자금을 모으고 좋은 남자를 만나 결혼해서 귀여운 손주를 안겨드리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다니던 대학을 그만두었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기도 했다. 20대 중반이 되어서야 중소기업에 취업했지만, 불경기와 코로나 19로 직장생활을 안정적으로 할 수 없었다. 

그러다 어느새 서른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다. 돌이켜보면 지금의 내 모습은 10대 때 꿈꾸던 것이 아니다. 어린 시절 나는 선생님이 되고 싶기도 했고 사업가가 되고 싶기도 했다. 그렇지만 서른이 다 되어서야 경력도 많지 않은 사회초년생이 되었다. 당연히 매일 부딪히고 깨지고 있다. 

주변에서는 여전히 내게 묻는다. ‘남자친구는 있니? 직업은 뭐야? 결혼은 할 거니? 연봉이 얼마니? 정규직이야?’ 부모님은 지인들의 자녀와 나를 종종 비교한다. ‘이번에 아빠 친구 딸 결혼한대, 이번에는 엄마 친구 아들이 공무원 붙었다네, 사촌 동생은 돈 잘 버는 잘생긴 남자친구가 있대.’ 

이런 말은 어릴 적 들었던 ‘너는 커서 뭐가 될 거니?’하고 비슷하게 들린다. 서른 살이 다 된 여자는 남자친구, 안정된 직장, 독립하기에 적당한 돈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사회통념인 것이다. 

통념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나처럼 평범하고 가진 것 없는 스물아홉 살의 여자는 작아진다. 불안하고 불완전한 스물아홉 살은 통념 앞에서 위축된다. 

나는 잘못 살고 있는 것일까? 

아니, 그렇지 않다. 통념에 충실하진 못하지만 나는 나답게 살고 있다. 지금까지 단 한순간도 대충 살진 않았다. 통념을 따라가고자 갖가지 공부를 했고, 취업을 위해 애쓰기도 했으며, 연애도 했었다. 물론 온전히 ‘성공’하진 못했다. 그래도 나는 지금 또 다른 미래를 위해 매일 치열하다. 늘 2% 부족하지만 헛살고 있지는 않음을 확신한다. 

그러니 우리들에게 사회가 정해 놓은 고정관념을 씌우지 않기를 바란다. 스물아홉 살의 여자가 살아야 할 삶이라는 타이틀에서 벗어나 있다 해도 나는 나다.  

나보다 어린 동생들과 친구들 누구에게나 말하고 싶다. ‘사회가 정해 놓은 규준에 충족하는 것이 성공은 아니야. 지금 그대로 너답게 사는 게 예뻐.’

박수진(이십대 직장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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