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간에게, 내가 글짜를 틀리개 쓰더라도 이해하새요. 난 여우라서 그래요! 

지금부터 나와 내 여우 칭구들의 얘기를 들려줄께요.”

어눌하고 귀여운 여우의 말투는 책을 읽어갈수록 안타깝고 애틋하다. 여우가 왜 이렇게까지 해야 했을까. 인간의 언어를 배운 특별한 여우가 인간들에게 쓴 편지 형식의 우화로 찾아왔다. 처음부터 끝까지 철자가 엉망이라 짧은 소설임에도 읽기가 수월하지 않다. 틀린 맞춤법 때문에 한 문장, 한 문장 곱씹으며 집중하게 하는 효과도 있다. 천천히 책장을 넘기다 보면 여우의 진정 어린 목소리는 생동감 있게 살아나 긴 여운을 남긴다. 

“칭구 조타는 게 머냐? 음, 내가 말해줄께요. 칭구가 조타는 건, 무리 전채가 등을 돌리는대도 내게 와주는 칭구가 잇다는 것.”

“인생이 멋찔 수 잇다는 걸 알아요. 대게는 멋찌죠. 난 무더운 날에 차고 깨끗탄 물을 마셧고, 사랑하는 이가 부드럽게 짓는 소리를 들었고, 눈이 천천이 네리며 숲피 고요해지는 걸 봣서요. 하지만 이제 그 모든 행복칸 광경과 소리가 사기처럼 느껴저요. 조은 시간은 그저 연기에 불과하고 그개 걷치고 나면 현실이 나타나는 거죠.” 

《여우 8》은 맨부커상 수상 작가인 조지 손더스가 쓴 우화소설이다. 인간에게 숲을 빼앗기고 같은 무리의 여우들을 모두 잃어버린 여우의 목소리를 빌려 인간의 무자비한 환경 파괴와 지나친 소비주의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 인간의 말을 배워 읽고 쓰고 말할 수 있는, 똑똑하고 순수하며 호기심 많은 ‘여우 8’이 화자이며, 여우 7이나 여우 28, 여우 111 등도 등장하고 있다. 어느 날 인간의 집 앞을 지나다 어머니가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것을 들은 여우 8은 그 음악 같은 낱말들에 반해서 밤마다 그 집을 찾아가 어설프게나마 인간의 말을 배우게 된다. 얼마 후 여우들이 사는 숲에 트럭이 몰려들더니 원시의 숲을 파헤치고 나무를 모조리 베어내기 시작한다. 여우 8이 근처의 간판을 읽고 그 자리에 ‘폭스뷰커먼스(FoxViewCommons)’라는 쇼핑몰이 들어온다는 것을 알아내지만, 이미 집과 먹을 것을 잃어버린 여우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제대로 먹지 못한 여우들은 점점 쇠약해지고 나이 든 몇몇 여우는 목숨을 잃고 만다. 아이러니하게도 이제 ‘폭스뷰커먼스’에서는 더 이상 여우를 볼 수 없게 된다. 사랑하는 친구와 터전을 잃어버린 채 좌절과 체념에 빠져 있던 여우 8이 인간들의 무자비함에도 불구하고 편지를 쓰기로 결정하는 장면에서, 간결하게 정곡을 찌르는 충고에서 무언가 강렬한 메시지를 느낄 수 있다. 여우 8은 인간의 착한 본성에 기대하고 인간이 행복하기를 바라면서 이 책을 남겼다. 틀린 철자지만 또박또박, 진심을 담아서. 

“당신들의 얘기가 행복카게 끈나기를 원한다면, 좀 차캐지려고 노력카새요.” 

여우 8이 말하는 마지막 문장이 뭉클하다. 인간들에게 아직 희망을 잃지 않은 여우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자. 인간과 동물의 복지는 상호 배타적인 것이 아니다. 그 사실을 인간만 모른다. 인간의 언어를 배울 생각이 없는 자연은 미세먼지로, 녹아내리는 빙하로, 신종 바이러스로 계속 말을 건다. 여우 8이 다급하게 외칠 것 같다. “언능 아라드러요, 재발!” 

오는 9월 11일(토) 10시, 청소년독서아카데미 《착한 소비는 없다》의 최원형 저자 초청강연이 학끼오TV로 방영된다. 친구들과 가족들과 강연에 동참하여 작은 실천을 모색하는 시간이 되면 좋겠다. 여우의 이야기가 해피엔딩을 맞이하는 것은 이제 편지를 받은 우리들의 온전한 몫이다.

한명숙(봄내중 수석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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