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선시장 이야기 ① 봉의산 아래 신선이 노닐던 동네
요선시장 이야기 ① 봉의산 아래 신선이 노닐던 동네
  • 김효화(춘천원도심 상권르네상스 사업단장)
  • 승인 2021.09.06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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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선당이 있던 지역이라 요선동

우리나라에서 요선(要仙 또는 邀仙)이란 지명이 쓰인 곳은 딱 두 곳이다. 영월의 요선암과 춘천의 요선동이다. 

영월의 요선암은 영월군 수주면 무릉리의 주천강 상류에 있는 너른 바위로, 바위 주변의 풍광이 신선이 머물 것만큼 아름다워 ‘요선’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마을 이름도 무릉도원에서 따온 ‘무릉리’이고 주변의 경관을 즐기려 이곳을 찾던 조선의 선비들이 요선정을 짓기도 했다. 

이곳과 같은 이름을 지닌 곳이 춘천의 요선동이다. 지금은 요선시장을 중심으로 건물과 상가가 즐비하다. 예전엔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짐작하기 어려운 이곳에는 왜 요선동이란 이름이 붙었을까. 

요선동은 봉의산 자락 바로 아랫동네이다. 이곳에 서면 뒤로는 봉황의 기운이 서린 봉의산이 우뚝 서 있고 오른편으로 검푸른 소양강이 유유히 흐르는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을 것이다. 멀리 용의 형상으로 장쾌하게 서 있는 대룡산이 맞은 편에서 봉황의 날갯짓에 화답하고 있으니 신선이 머물 곳이 따로 없었으리라. 

이곳에는 예부터 초막 형태의 정자가 있었다고 한다. 1573년 춘천도호부에 성의국이 부사로 부임한 이후 기와를 올린 14칸의 건물을 지어 요선당이라 이름 짓고, 객사이자 연회공간으로 사용했다. 이 지역은 요선당이 있었던 곳이라 하여 요선당이라 불렸고 1946년 요선동으로 개칭되었다. 

한국전쟁 후 요선시장 건립, 상권 확장 

한국전쟁 때 요선동은 폐허가 되었다. 근화동에는 미군기지가 들어섰다. 지금의 서부시장과 양키시장 사이로 양공주들이 살림을 차렸다. 요선동 길을 따라 양공주들이 미군들로부터 빼돌린 미제 물건을 파는 좌판이 깔렸다. 

장사치가 늘어나자 1956년 요선시장이 세워졌다. 시장에 60여 칸의 점포가 들어섰다. 1층은 가겟방으로 꾸며졌고 2층은 살림집이었다. 가겟방 옆으로 가파르게 세워진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양쪽으로 방이 한 칸씩 있고 가운데에 부엌이 있었다. 공동 화장실이 1층과 2층의 복판에 있었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1층에서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2층에서 옹기종기 살았다. 좁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이웃들은 가족같이 지냈다. 

1971년 서부시장과 요선시장을 잇는 요선터널이 뚫렸다. 근화동과 소양로, 그리고 시내를 잇는 가까운 길이 생긴 덕분에 요선동은 더욱 번창했다. 요선시장 주변으로 상가가 빼곡하게 들어섰다. 

1970~80년대 요선동은 춘천에서 가장 번화한 동네였다. 값싸고 맛있는 안주와 훈훈한 인심이 젊은이들을 꼬여냈다. 시장 골목에는 운동가요가 나지막이 울려 퍼지곤 했다. 이곳은 어두운 시대를 살던 젊은이들이 모여 사회를 비판하고 예술을 논하던 장터였다. 

1994년 요선터널이 무너졌다. 주변에 60채가 넘는 집이 헐렸고 재개발이 추진됐다. 춘천에서는 부도심이 확장되고 대형마트가 속속 들어섰다. ‘성매매방지 및 피해자보호등에 관한 법률’이 2004년 제정되면서 인근의 집창촌이 폐쇄되고 유흥음식점이 잇따라 문을 닫자 요선동은 옛 영화를 잃어갔다.(계속)

김효화(춘천원도심 상권르네상스 사업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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