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과 마음이 모두 건강한 사람을 만나면 그 기운이 전해져서 덩달아 행복해진다. 고화정 씨가 바로 그렇다.

고 씨에게 29살 2020년은 정말 특별했다. 봄까지 고향 전북 김제에서 살다가 가을에는 생면부지의 도시 춘천시민이 됐다. 그는 섬유근육통이라는 난치병을 지니고 있다. 14살 무렵부터 전신의 통증과 우울증이 일어나 삶의 질을 떨어뜨렸다. 고교 시절에는 학업 스트레스까지 더해져 더욱 지친 몸과 마음, 자연스레 남들과 떨어져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춘천사람이자 새내기 문화기획자가 된 지 어언 1년, 고화정 씨는 “몸과 마음이 아픈 이웃에게 나의 치유 경험을 나누고 싶고 언제가 ‘뫔 아일랜드 페스티벌’을 춘천에서 꼭 열고 싶어요”라며 포부를 전했다.

어렵게 들어간 대학도 건강악화로 자퇴했다. 이후 8년 동안 집과 전주의 병원을 오가며 치료에 집중했다.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머무는 사회적 고립의 시간이었어요. ‘나는 도대체 어떤 존재인가?’ 숱하게 자문(自問)했지만 알 수 없었죠.” 

가끔 운 좋게 컨디션이 좋은 날에는 ‘김제지평선축제’, ‘남원춘향제’ 등 지역의 다양한 축제를 보러 다녔다. 축제는 유일하게 그에게 위로와 에너지를 주었다. “신기하게도 축제를 구경하고 돌아오면 좀 더 건강해졌어요. 축제 에너지가 내게 스며들었나 봐요. 의사선생님도 놀라셨죠. 남원춘향제가 한창이던 어느 곳에서 하늘을 보고 결심했어요. 힘들고 아픈 사람들에게 힘이 되어 줄 축제기획자가 되자고 말이에요.”

문화예술학습기반이 없는 곳에서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라 풀이 죽어 있던 순간 SNS광고 하나가 눈에 띄었다. 한국콘텐츠진흥원과 강원창조경제혁신센터의 ‘창의인재 동반사업’이다. “정말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나 봐요. 그토록 원하던 축제·문화기획자 양성과정이어서 정말 간절했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 나를 제외한 나머지 합격자들은 문화예술 분야에서 눈에 띄는 스펙을 쌓아온 청년들이었어요. 전공도 경력도 없는 내가 합격할 수 있었던 건, 밤새워 진심을 다해서 쓴 자기소개서와 면접이었나 봐요.” 강원권에서는 강영규 춘천마임축제 총감독, 강승진 춘천문화재단 문화도시센터장 등 문화예술분야의 뛰어난 전문가들이 멘토가 되어 1대 1 멘토링을 6개월 동안 진행했다. 강영규 춘천마임축제 총감독이 고 씨의 멘토가 됐다. 좋지 않은 건강 탓에 고향을 떠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할 수 없었던 그의 운명이 바뀐 순간이었다.

생면부지의 도시 춘천의 셰어하우스에 머물며 교육을 받은 후 성과공유회에서 ‘뫔 아일랜드 페스티벌’ 기획안을 발표했다. “뫔은 몸과 마음의 합성어에요. 움직임을 통해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축제입니다. 멘토링과 성과공유회는 내가 세상에 나오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었어요. 또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람들 앞에서 나의 이야기를 한 특별한 경험이었어요. 그 무렵 통증도 수월하게 다스릴 만큼 건강도 회복됐어요.” 

그가 그렇게 알에서 깨어날 때 춘천은 법정문화도시로 지정됐다. 고 씨가 춘천에 살아야 할 이유가 더 명확해졌다. 2020년은 그렇게 그에게 생의 특별한 해로 새겨졌다. 

춘천시민이 되고 나서 첫 활동은 춘천문화재단의 ‘가치 안은 배움터’였다. 마을 의제를 문화예술 활동으로 실현하는 프로젝트이다. 코로나로 인해 본격적인 활동은 멈춰있지만 ‘당근책’으로 이름을 바꾸어 다시 시작될 예정이다. “후평2동의 의제인 ‘돌봄’을 선택했었어요. 돌봄이 필요한 어르신들과 아이들의 마음을 잘 이해하게 됐죠. 참가자들과 함께 더 나은 가치를 위해서 함께 고민하고 행동하는 게 참 행복했어요. 오랫동안 사회적으로 고립된 생활을 해온 나를 춘천과 춘천사람들이 이어주고 결핍을 채워주기 시작했어요.”

도시문화를 만들어가는 커뮤니티 사업 ‘춘천을 살아가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자’에도 참여해서 뮤지컬 배우 정인화 씨를 도와 ‘뮤친소’를 통해 시민들에게 뮤지컬의 매력을 선물했다.  “정인화 언니 곁에서 많이 배우며 도왔어요. 시민들이 지난해 시그널페스티벌의 작지만 의미 있는 무대에서 노래할 때 내 꿈이 이뤄진 것처럼 정말 기뻤어요.” 그 기쁨에 힘을 받아 춘천문화재단의 2021 생활문화매개자로도 활동하며 지역의 생활문화동호회들의 역량강화와 교류를 돕고 있다.

고 씨는 몸의 움직임으로 회복의 경험을 나누는 프로그램에 관심이 많다. 사진은 지난 7월 그가 진행한 ‘옥상상상’ 프로젝트 중 ‘파쿠르 놀이터’.

최근에 그가 특히 힘쓰고 있는 일은, 몸의 움직임을 춘천의 다양한 문화활동에 접목하는 것이다. 특히 파쿠르(parkour: 도시와 자연환경 속에 존재하는 다양한 장애물들을 활용하여 효율적으로 이동하는 개인 훈련)를 통한 몸의 움직임으로 회복의 경험을 나누는 프로그램이다.

그 일환으로 지난 5~6월에는 청년들을 위한 다양한 문화활동을 펼치는 비영리 사단법인 ‘강원살이’와 함께 도심 유휴공간에서 지역 청년들을 대상으로 ‘쿠르크루’를 진행했다. 7월에는 춘천사회혁신센터와 함께 옥상의 가치에 주목하여 기획한 ‘옥상상상’ 프로젝트에서 ‘파쿠르 놀이터’를 열었다. “신체 활동이 쉽지 않은 시대 분위기가 코로나블루를 더 확산시키고 있다고 생각해요. 몸과 마음은 하나이기에 몸의 움직임으로 마음을 돌보고 치유할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어요.”

모험이 강한 움직임뿐만 아니라 명상과 산책 등 작은 몸짓을 통한 치유에도 관심이 크다. 시민의 쓸모있는 딴짓을 지원하는 ‘일당백 리턴즈’에 참가하여 지난 8월에는 청년여성들과 함께 ‘마음탐험가들 in 변화의 숲’을 진행했다. 춘천숲자연휴양림에서 산책·스트레칭·명상·수지에니어그램(180개의 카드를 사용해서 자신을 한 장의 도표로 형상화하여 자신의 고유함을 만나는 프로그램)을 통해 나를 이해하고 몸과 마음의 에너지를 얻고, 나의 감정과 경험을 공유하며 참가자 각자의 본질을 찾는 시간을 가졌다. “나에 대한 궁금증과 고민으로 힘겨워하는 또래들과 경험을 나누며 서로의 지지자가 된 소중한 경험이었어요. 프로그램 이후 긍정적 변화를 알려와서 보람이 커요. 이제 모두 친구가 됐어요.”

현대무용동아리 ‘웃는몸뜰’의 멤버로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10월에 서면의 커뮤니티 공간 ‘재미야’에서 6명의 동료들이 김동일 현대무용가와 함께 공연을 엽니다. 건강한 몸짓을 보러 오세요.” 그의 밝은 웃음에서 병을 다스리며 살아가는 어두운 그늘을 찾을 수 없었다.

새내기 문화기획자가 되고 춘천사람이 된 지 어언 1년, 참 많은 일을 했다. 춘천은 당신에게 어떤 도시냐고 묻자 “춘천은 나를 궁금해하고 ‘너 괜찮아?’라며 안부를 물어봐 주고 위로해주는 도시”라고 말한다. 그런 도시에서, 누가 시키지도 큰 돈벌이도 아닌 일들을 왜 하냐고 묻자 “우선 내가 살려고 하는 일이에요.(웃음) 그리고 여기서 많이 보고 배워서, 몸과 마음이 아픈 이웃에게 나의 치유 경험을 나누고 싶습니다. 또 언제가 ‘뫔 아일랜드 페스티벌’을 춘천에서 꼭 열고 싶어요”라며 미소를 짓는다. 이제 그는 충분히 건강하다. 더 이상 그에게 건강하냐는 안부를 묻지 않아도 되겠다.

박종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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