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의 신석기시대 유적

춘천에 구석기시대 주민의 흔적이 보인 후, 신석기시대 유적이 여러 곳에서 확인되고 있다. 하지만 어느 시점에 신석기시대 마을이 처음 조성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당시 신석기인은 사냥, 고기잡기, 채집 생활을 하였는데 그 흔적이 만천리 BNBK스프링베일 GC 부지, 강촌IC에서 확인되었고 내평리, 신매리, 중도동, 우두동, 삼천동, 천전리 등지에서 집자리 또는 토기편이 확인되었다. 이 중에 신매리 일원에 살던 주민의 마을이 큰 규모일 가능성이 발굴조사에서 확인되었다.

춘천 혈거유지

그런데 춘천에서 가장 주목되는 유적은 현 한림대학교에 있는 춘천 혈거유지이다. 학계에 알려진 내용은 신석기시대 사람이 자연동굴이 아닌 인공적으로 만든 동굴에 살다가 무덤으로 사용한 그 유례가 드문 유적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토기와 석기를 살펴보면 동해안식 토기와 석기가 확인된다는 점이다. 이러한 특징은 춘천지역의 문화 형성과정이 다양한 계통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토기를 살펴보면 춘천지역에서 주로 확인되는 빗살무늬가 베풀어진 문양이 아니고 바닥이 편평한 토기라는 점이다. 이러한 모양의 토기는 주로 동해안에서 보이는 것들이다. 특히, 양양 오산리유적에서 출토된 토기와 구연부에 찍은 문양, 손잡이가 달린 것, 바닥이 평평한 점이 유사하여 오산리식토기의 범주에 속한다. 그리고 돌도끼(석부 石斧)는 경상도 후포리에서 확인되는 돌도끼와 유사하다. 한편, 결합식 낚싯바늘도 동해안에서 확인되는 것과 동일하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춘천지역의 신석기문화 형성에 동해안 지역의 주민 이동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울진 후포리유적은 최근 발굴조사를 통하여 많은 돌도끼가 확인되었는데 그 성격은 아직 정확히 설명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동해안에서 확인되는 이러한 문화 요소가 춘천에서 나타난 것은 신석기시대 동해안 지역에 살고 있던 주민의 이동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시야를 환동해 관점으로 보면

춘천 혈거유지에서 출토된 유물은  그동안 국내 유적을 중심으로 검토가 되었지만, 시야를 환동해 고고학 관점에서 보면 그 범위는 러시아까지 확대된다. 연해주 올가지구의 루드나야 강의 지류인 크리바야 강 상류에 위치한 쵸르토브이 보로타(Chyortovy Vorota)유적은 자연 동굴로 신석기시대 주민이 살았던 흔적이 확인되었다. 1989년에 발굴된 이 유적은 동굴 내부에서 불에 탄 주거지가 확인되었고 5구의 인골이 발견되었다. 유물은 토기, 간석기로는 돌도끼, 화살촉, 타제석기는 창끝, 화살촉, 돌칼, 긁개, 뚜루개, 갈돌, 프리즘형 몸돌이 출토되었다. 이외에 조개와 뼈로 만든 다양한 장신구가 확인되었다. 그런데 토기와 장대형의 돌도끼는 동해안 지역에서 보이는 것과 유사하지만 결합식 낚싯바늘은 보이지 않는다. 즉, 동해안 지역과 공통점과 차이점이 동시에 확인되고 있다.

이러한 고고학적 특징은 신석기시대 환동해지역을 중심으로 각 지역 사이에 활발한 교류가 진행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적어도 춘천지역에 처음 출현한 신석기시대 주민의 증거는 춘천 혈거유지로 여기에 살던 주민들은 광범위한 지역과 교류가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춘천 혈거유지”는 강원도에서 1971년 12월 16일 그 중요성을 인정하여 강원도 기념물 제1호로 지정되었다. 그런데 “혈거유지”라는 단어는 그 뜻을 이해하기 어렵다. “춘천 동굴유적”으로 변경하는 것은 어떨까?

심재연 (한림대학교 한림고고학연구소 연구교수)

참고자료 : 국립문화재연구소, 2012, <한국고고학 전문사전 -신석기시대편->김재윤, 2015, <평저토기문화권 동부지역의 6500~6000년 전 신석기문화 비교고찰>, <한국고고학보> 96, 한국고고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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