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경(큐레이터)

고개를 드는 집, 낯가리는 별채, 메꽃당, 모델하우스, 生活 너머의 집, 어디에도 없는 정원, 움직이는 집, 키가 자라는 집, 항해하는 집.

나열된 명칭들은 다름 아닌, 시인이 지어준 빈집의 이름들이다.

2019년, 도시재생 지역인 약사명동에서는 터무니맹글이라는 이름으로 공공미술이 진행되었다. <약사시집>은 그 중 마을의 숨은 공간들을 해석하고 작품을 설치하는 프로젝트인 ‘자투리갤러리 싹틈’의 일환으로 기획된 프로젝트였다. 골목 구석구석 오랫동안 방치된 빈집에 세 명의 젊은 시인 윤한, 최록, 강혜윤 작가가 시를 쓰고 이름을 지어주었으며 어진선 작가가 싯구를 금속 글자 조형으로 설치하였다.

공공미술이라고 하면, 누구든지 제일 먼저 벽화를 떠올린다. 오랫동안 벽화는 낡은 건물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는 대표적인 공공미술 프로젝트로 인기를 얻었다. 그러나 벽화마을이 명소가 되고 상업적으로 번성하면 원주민이 쫓겨나게 되는 결과를 야기하는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인해, ‘공공미술이란 누구를 위한 것인가?’라는 질문이 제기되어 온 것 또한 사실이다. 이화동, 행궁동 등 유명한 거리의 벽화가 동네 주민들에 의해서 훼손된 사건들이 대표적이다.

약사시집은 그동안 있어왔던 공공미술과는 결을 달리하였다. 낙후된 곳에 새로운 예술을 입히는 방식이 아니라, 빈집과 그 풍경 자체가 콘텐츠였기 때문이다. 그 처연한 광경에 시인은 아낌없이 시를 써주었으며 미술이라기보다는 문학에 가까웠다. 

우편함처럼 만들어 놓은 시집 함에 작은 시집을 넣어주러 가끔 들린다. 최근에는 강아지풀이 하늘거리던 <어디에도 없는 정원>이 철거되었다. 9개로 시작했던 약사시집은 이제 3곳만이 남았다. 약사명동 곳곳에 있었던 빈집들은 하나둘 철거되고 반듯한 집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이상하게도 빈집이 사라짐에도 불구하고 벽화가 지워지는 사례처럼 훼손되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사라진 약사시집은 시인이 지어준 시와 함께 추억과 기억으로 머물렀다.

공공미술은 공공장소 속의 미술에서 장소로서의 미술, 그리고 커뮤니티아트 등으로 점차 진화하고 있다. 수동적인 감상자 위치에 있던 주민이, 주체가 되는 형태로의 변화와 함께 공동체 문화를 형성하는 무형의 프로젝트까지 공공미술로 포섭된다. 정부와 지자체에서 쏟아지고 있는 공공미술 기금이 시민사회와 관, 그리고 예술가의 삼자 구도 속에서 충분한 논의와 공감을 바탕으로 좀 더 성숙하고 다양한 형태로 진화되어 가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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