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E’s STORY] 타인의 고통에 민감하기
[SHE’s STORY] 타인의 고통에 민감하기
  • 탁운순 (강원이주여성상담소장)
  • 승인 2021.09.13 19:3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탁운순 (강원이주여성상담소장)
 

퇴근 무렵 상담소로 A가 찾아왔다. A는 올봄에 남편을 상대로 가정폭력으로 인한 이혼소송을 제기했는데 남편이 반소장을 낸 것이다. 남편은 A가 결혼생활에 뜻이 없고 불충실했으며 사기 결혼이라고 반소장에 적었다. 남편의 반소장에는 결혼 10년 동안 A가 당했던 폭력에 대해, 외출도 제한하며 친구도 만나지 못하게 하고 휴대폰을 검사하던 학대에 대해 단 한 줄도 언급하지 않았다. 십 년 동안의 가정폭력이 아니라면 A는 결코 집을 나오지 않았을 것이고 남편에게 이혼소송을 제기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십 년의 고통으로 A는 병원치료를 하고 있으며 수면장애와 불안장애를 동시에 앓고 있다.

대부분의 결혼 이주여성 상황은 A와 별반 다르지 않다. 이혼소송 시 대부분의 한국인 남편들이 아내의 결혼 의도를 오해하고 애초에 정착에 의지가 없었다고 공격한다. 또한 이주여성의 체류자격조차도 비자 연장을 위해서는 매번 한국인 남편의 보증이 있어야 하고, 일정 시기마다 남편의 보증이 필요한 여성들은 폭력 상황이 생겨도 남편을 신고할 생각조차 못 한다. 만약 이주여성이 가정폭력으로 신고를 한다면 남편은 체류보증을 철회할 것이고 남편의 유책을 증빙하지 못한 여성은 본국으로 송환된다. 우리나라의 이주정책은 이주여성을 단지 한국 남자의 배우자로 아이를 낳고 돌보는 잠재적 임시체류자로 인식할 뿐이다. 또한 이주여성의 자국 문화는 자긍심이 배제된 박제된 형식으로만 표현되고 한국문화를 배우도록 요구받는다.

타인의 고통을 쓴 수전 손탁은 “사람은 누구나 이중국적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했다. 건강한 나라와 병의 나라에 동시에 속한 시민으로서의 이중국적이다”라고 말했다. 건강한 몸과 아픈 몸이라는 ‘이중국적’을 통해서만 우리는 겨우 타인의 고통을 헤아릴 수 있다고 했다. 

그러고 보면 A의 남편은 아내의 고통을 헤아릴 수 있는 경험이 아예 없었는지 모른다. A가 경험한 건강한 나라와 병든 나라에 동시에 속한 경험을 가지지 못했을 수 있고, A와 같은 이주의 경험도 A처럼 이중 언어를 삼켜야 하는 고통도 A처럼 배우자의 폭력에 무저항적으로 노출된 경험도 없을 것이다. 단지 그는 대한민국에서 하노이까지 가서 아내를 만난 50대의 가부장적인 남성일 뿐이다. 

이해란 비슷한 크기의 경험과 감정을 포개는 것이 아니라 치수가 다른 옷을 입은 뒤 자기 몸의 크기를 다시 확인하는 일이라고 했다. 

강원이주여성상담소 2층에서는 일요한글교실과 주중 커뮤니티가 운영되고 있다. 우리는 다 함께 서로가 서로의 경험과 감정을 포개고 치수가 다른 옷을 확인하면서 서로를 함부로 해석하지 않으며 해석 당하지 않을 권리를 존중하는 일을 배운다. 타인의 고통에 민감하기 위해서 타인의 경험과 감정이 우리의 몸을 통과하면서 얻는 해석에 대하여 판단하지 않는 것이다. 

A는 자국 언어 통역사의 지원을 받아 2층 상담실에서 반소에 대한 반박 답변 글을 쓰기 시작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