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욱(작가, 춘천문인협회 회원)

최돈선 선배(시인)를 처음 만나기는 1970년 늦봄 어느 날, 춘천교대 풀밭에서였다. 당시 교대 학보사 편집장인 문우(文友)‘이학천’이 내게 최 선배를 소개해 준 것이다.

“이번에 월간문학 시 부분 신인상을 탄 선배님이셔.”

재학 중 시인으로 등단했다는 사실에 나는 경의의 마음으로 인사를 드렸다. 그러자 최 선배는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풀밭에서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뭘 찾으세요?”

“네 잎 클로버지. 행운의.”

하면서 미소 지었다. 

알고 보니 최 선배는 내가 잘 아는 집에서 하숙하고 있었다. 지금의 석사동 동사무소 자리에 있었던 그 하숙집은, 기억건대, 허름한 초가집이었다. 며칠 후에 그 하숙집에서 다시 만났을 때 최 선배는 내게‘신예 작가 김승옥’의 얼굴 사진이 대문짝만한 책 표지를 보여주며 찬탄하고 있었다. 특히 전쟁 중의 주검이 등장하는 ‘건(乾)’이란 소설에 대해 찬탄하던 모습이라니.

“햇빛 아래 놓인 주검을 이리도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을까! 김승옥 작가야말로 한국문학의 새 지평을 연 거야. 안 그래?”

세월이 흘러서 1984년인가 육림극장 부근의 ‘비탈에 선 카페’에서 최 선배를 다시 만났다. 소설가 이외수 선배도 그 자리에 있었는데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두 분은 춘천교대를 같이 다닌, 막역한 사이다. 나까지 셋이 함께 앉아 이런저런 얘기 끝에 ‘씨름’얘기까지 나왔다. 내가 말했다. 

“제가 이래 봬도 대학 1학년 때, 교내체육대회의 씨름경기에 나가 우승한 적이 있다니까요.”

최 선배가 고개를 꺄우뚱하며 말했다.

“정말이야?”

“그럼요.”

“그래? 그럼 나랑 씨름해 볼까?”

“좋습니다.”

사실 몇 년씩이나 나이 차가 나는 데다가, 체격만 봐도 최 선배와 나는 같이 씨름할 게 못 됐다. 하여튼 최 선배와 나는 비탈에 선 카페에서 난데없이 씨름 한판을 벌였다. 

그 결과는 이 글을 읽는 분들의 상상에 맡긴다. 

‘비탈에 선 카페’.

상호 그대로 고개 비탈에 그 카페가 있었다. 고개? 내가 그로부터 4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2016년에 발간한 첫 작품집 ‘K의 고개’의 고개다. 

최 선배와 씨름한 날짜는 기억 못 하지만 계절은 기억한다. 겨울이었다. 

80년대 전반의 겨울 어느 날, 상호도 이상한 카페에서 벌어진 시인 선배와의 씨름 한판. 

요즘에서야 나는 그런 일이 벌어진 시대적 배경을 한 번 분석해보았다. 

전두환 씨가 대통령으로 있던 엄혹한 시대였다는 게 그 배경이었다. 이외수 선배, 최돈선 선배 그리고 나까지, 세 사람은 알게 모르게 ‘겨울 날씨처럼 우울한 시대’를 체감하고들 있었던 게 아닐까. 

  최돈선 시인 : 시집 ‘칠 년의 기다림과 일곱 날의 생’ ‘사람이 애인이다’‘나는 사랑이란 말을 하지 않았다’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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