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살롱] DJ 최인의 디스크자키 이야기 (6)
[문화살롱] DJ 최인의 디스크자키 이야기 (6)
  • DJ 최인(한국방송디스크자키협회 정회원)
  • 승인 2021.09.27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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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다방의 변천사

뮤직살롱의 전성시대

곧이어 소공동 경향신문 옆 골목에 ‘라스베가스’가 문을 열고 최동욱과 지미가 공동사회를 봤다. 또 그 경향신문사 옆에 ‘포시즌스’가 개업을 했다. 한편 명동에는 명동장 건물 2층에 ‘오비스캐빈(OB’s Cabin)’이, 3층에 ‘코스모스’가 무대를 갖추고 가수와 그룹들이 출연하는 라이브음악을 제공했다. 

명동극장 옆 골목 1층에 라이브음악을 제공하는 ‘멕시코’가 성업하면서 배삼룡, 최동욱이 사회자로 나서기도 했다. 또 레코드음악실 ‘시보네’를 개조한 ‘실버타운’, 명동공원 옆 ‘오비타운’(홍대 재학생 이상벽이 사회를 봄) 등이 있었다.

이 무렵 충무로 2가에서 종로 2가로, 다시 소공동 치과대학 건너편 ‘월계수다방’을 개조하여 옮겨간 뮤직홀 ‘세시봉’이 서린동으로 다시 옮겨가 레코드 음악감상실에 상설무대를 설치하여 가수들의 라이브공연을 시도하다가 업태 위반으로 급기야 폐업조치 되었다.

음악다방의 등장

뮤직살롱은 무대의 유지에 출연 비용 등 막대한 지출이 전제되어야 했기에 경영난이 심화되어 3~4년간 지속되다가 결국 쇠잔했다. 이 틈에 지금까지의 음악감상실과는 달리 입장료를 미리 받지 않고 레코드음악 위주로 들려주는 이른바 ‘음악다방’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소공동의 매머드급 음악다방을 비롯해 명동의 ‘심지’와 ‘꽃다방’, 광화문의 ‘초원’과 ‘여심’, 소공동의 ‘향지’, 충무로의 ‘본전다방’ 등이 그 대표적인 업소였다.

서울 중심가에서 생겨나기 시작한 음악다방은 전국적으로 확산되면서 ‘70년대 중후반을 정점으로 80년대 후반까지’ 전국 중소 도시의 다운타운에 음악다방 문화를 꽃피웠으며 그런 과정에서 수많은 음악다방의 DJ가 양산되었다.

‘7~80년대’ 춘천의 대표적인 음악다방은 춘천 명동의 ‘미미다방’, ‘설파다실’, ‘오계절’, ‘본전다방’, ‘돌체다방’, ‘전원다실’, ‘랑데뷰’, ‘모모다방’, ‘초원의 집’ ‘약속다방’ 등이 있었고, 시청 옆 1층에 ‘빅토리아(여왕다실)’, ‘바라’ 등이 있었다. 공지천 호수를 끼고 ‘이디오피아의 집’과 지금은 사라진 ‘에메랄드카페’가 음악다방으로 알려져 있었다. 비교적 늦게 생긴 요선동의 ‘오륙도다방’, 소양극장(피카드리의 전신) 옆 카페 ‘두발로’, 명동 지하의 ‘마로니에’에서도 DJ가 음악을 틀었다. 춘천의 유일한 음악감상실은 육림극장 건너편 2층의 ‘둘레’(후에 ‘리빙’으로 바뀜)가 있었다.

극장식당(극장식 맥주홀)의 붐

한편 뮤직살롱과 맥주홀의 복합형태로 극장식 맥주홀(극장식당)이 붐을 이룬 것도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초반까지의 풍류였다. 무교동의 ‘월드컵’, ‘산수갑사’, 명동의 ‘라데빵스’, ‘유네스코살롱’ 등이 있었다. 그리고 맥주홀 등에서 1인 또는 2인 이내의 출연을 전제로 허가된 라이브 음악공간도 ‘70년대 통기타 붐에 편승하여 많은 가수들이 양산되기도 했다. 그런 과정에서 어쿠스틱기타로 가창하는 형태의 1인 또는 2인의 노래 형태를 ‘포크송’ 또는 ‘포크싱어’로 오용하는 아이러니가 생겨나기도 했다.

DJ 최인(한국방송디스크자키협회 정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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