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준구 (춘천문화원 춘천학연구소장)

청평산 청평사 계곡 3㎞는 고려 때 이자현(李資玄:1061~1125)이 37년간 이곳에 머물며 조성한 거대한 원림(圓林)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원림은 고려정원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현재 일본 교토(京都)에 있는 사이호사(西芳寺) 고산수식(枯山水式) 정원보다 200년 정도 앞서는 것으로 밝혀졌다. 청평산 원림은 구송폭포, 영지, 청평사 경내, 서천, 선동, 견성암 등으로 구역을 구분할 수 있다. 그 가운데 영지를 중심으로 하는 구역이 원림이며 고려정원의 모습을 원형에 가깝게 보존하고 있다. 

청평산 부용봉 견성암을 비추는 영지

 매월당 김시습은 영지에 대해 ‘네모난 연못에 천 층의 봉우리 거꾸로 꽂혀 있네’라고 표현했다. 영지(影池)는 남북 19.5m, 북쪽은 16m, 남쪽은 11.7m로 뒤쪽이 약간 넓은 사다리꼴 모양이다. 사다리꼴 모양으로 연못을 구성한 것은, 영지에 비친 청평산 부용봉과 견성암의 모습을 감상하는 사람의 시각을 고려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영지 바닥에 커다란 돌을 이중으로 깔아 바닥에서 물이 솟아오르는 구조로 되어 있어서, 연못의 물이 항상 거울처럼 평온한 상태의 수면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영지에는 불교 상징물인 연꽃을 심지 않고, 삼신산을 뜻하는 바위만이 놓여 있다.

 김상헌(1570~1652)은 영지를 살펴보고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다.

 거울 같은 물 천 년을 한 빛깔로 맑아서 止水千年一色淸 견성암 고운 단청 연못에 비춰 분명하네. 上方金碧倒空明 나그네 와서 멋쩍게 흰 머리 비쳐 보고는 客來羞照星星鬢 애오라지 못가로 가서 갓끈을 씻는구나. 聊就池邊試濯纓 ( 「영지影池」, 『청음집』 )

조선 시대 기행문을 통해 본 영지 

안석경(1718~1774)은 청평산을 유람하고 기문을 남겼는데, 그 기문에 “구불구불한 길을 수백 보를 오르면 영지(影池)가 있다. 못의 깊이는 한 자 정도로 초록빛에 깨끗하고 물결이 없어서 사방의 산 그림자를 볼 수 있는데, 털끝같이 작은 것까지 모두 비친다. 고목이 둘러싸고 있는데, 네 그루의 잎갈나무는 바로 나옹(懶翁)이 심은 것이라고 전한다. ( 「유청평산기(遊淸平山記)」, 『삽교집』)”라고 하였다.

 조인영(1782~1850)은 “영지는 절의 문 앞에 있다. 깊이는 한 자가 되지 않고 사방 열 걸음도 안 된다. 가뭄에도 줄지 않고, 장마에도 또한 불지 않는다. 물이 맑아 하늘에 달이 환하면 견성암이 산 중턱을 따라서 영지로 쏟아져 들어오니 풀 한 포기도 분별할 수 있었다. 이런 이유로 영지란 이름을 얻었다.(「청평산기(淸平山記)」, 『운석유고』)”라고 하였다.

 서종화(1700~1748)는 “구불구불한 길을 지나 영지(影池)에 이르렀다. 연못은 사방 5무(畝)이고 문석(文石)으로 계단을 만들었다. 계단 위에는 네 그루의 잎갈나무가 빙 둘러쳐 있는데 나옹(懶翁)이 심은 것으로, 크기가 모두 수십 아름이고 울퉁불퉁 구불구불하게 틀어져 있고, 가지와 잎은 매우 기이하다. 북쪽으로 부용봉(芙蓉峰)과 마주하고 있는데, 몇 리 떨어진 먼 곳에서도 보인다. 떨어질 듯이 높이 솟은 산이 연못에 비친 것을 살펴보니, 대암(臺庵:견성암)의 창문과 바위의 위아래가 모두 또렷하여 그것을 헤아릴 수 있었다. 바람이 불어와 투명한 물결을 일렁이면 봉우리와 초목이 모두 흔들리어, 광경이 황홀하여 거의 말로는 표현할 수 없었다. (「청평산기(淸平山記)」, 『약헌유고』)”라고 하였다.

영지 명문 바위

영지는 거울같이 맑고 고요하다. 그래서 사람이 와서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고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자신을 돌아다 볼 수 있는 곳이다. 마음에서 온갖 것을 내려놓으면, 온갖 것이 사라지게 되어 있다. 영지 곁에는 커다란 바위가 있는데, 일명 명문(銘文) 바위다. 그 바위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새겨져 있다.

마음이 일어나면 온갖 것이 일어나고 心生種種生

마음이 사라지면 온갖 것이 사라지리. 心滅種種滅

이처럼 모든 것이 사라지고 나면 如是俱滅已

머무르는 곳마다 극락세계로구나.  處處安樂國

영지는 청평산의 눈이자 마음이다. 마음을 다독이고 싶다면 청평산 영지에 나아가서 나의 얼굴을 비추어보고 영지 명문 바위의 문구를 되새겨 보는 방법은 어떨까! 나옹화상이 심었다는 나무는 지금 없지만, 그것에 견줄만한 고목이 있어서 그 또한 위안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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