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 올드 데이스 /  박규원 / 민음사

어느 날 노란색 SNS를 통해 춘사톡톡 회원들과 함께하고 싶다는 김창수 선생님의 제안으로 읽게 된 《상하이 올드 데이스》. 왠지 모르게 친근하면서도 가슴 한편이 짠한 노란색이 눈에 띄었다. 노란색 무지 양장본에 드리워진 한 쌍의 남녀 사진과 진분홍색으로 새겨진 제목은 나의 이목을 끌기에 과하지 않을 만큼 적당했다. 사실 책을 마주하면서 제목보다는 그 두 사람의 모습과 표정에 담긴 그 둘의 관계에 호기심이 더 생겼다. 책을 한 장 한 장 읽어가며 차곡차곡 쌓여가는 감정은 ‘부끄러움’ 그 자체였다. 중국에서 항일 운동을 한 김덕린과 안창호와 호형호제하며 독립운동을 한 그의 아버지 김필순을 이제야 알게 된 것이다. 이제야 말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양의사이자 독립운동가인 김필순의 아들로 중국 영화 황제라 불렸던 김염이 바로 김덕린이다. 김염은 1910년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신민회에 독립운동 자금을 조달하던 김필순이 105인 사건에 연루되면서 가족 모두가 중국으로 망명하게 되어 그곳에서 자랐다. 김필순은 중국에서도 독립운동을 이어갔지만 일본인 밀정에 의해 독살당하게 되고, 김염의 가족은 뿔뿔이 흩어지게 된다. 이때 감염은 상하이의 친척 집에 의탁하게 되는데 그를 돌보아준 이들이 김규식과 김순애이다. 상하이 임시정부 초대 외무총장이었던 김규식과 신한청년당의 김순애가 김필순의 여동생 부부였던 것이다. 이들을 제외하고도 역사책 속의 항일 운동가를 비롯한 유명 인사들이 김염의 가계도에 제법 많이 등장한다. 

 김염은 영화에 대한 열망을 펼치기 위해 그의 나이 열일곱에 영화계에 발을 담그게 되고 수많은 시련을 이겨내며 기어이 ‘중국 영화 황제 김염’이라는 명성을 얻게 된다. 그는 항일 영화에 출연하여 열연하기도 하였으며 항일 자금 지원과 조선인 학교를 후원하는 등 구국 운동에도 참여하였다. 그가 이렇게 항일 활동을 할 수 있었던 것 또한 아버지 김필순과 어머니, 그리고 그의 주변인들의 영향이 크지 않았을까 싶다. 

감동과 함께 흥미롭게 읽힌 《상하이 올드 데이스》는 김염의 후손인 저자 박규원이 8년간에 걸친 취재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혈연에 대한 단순한 감정적인 결과물이 아니다. 역사 속에서 개인의 운명적인 삶을 세세히 들여다보게 해준 저자의 노력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한편의 휴먼 다큐멘터리를 감상한 것과 같이 마음이 따뜻해짐과 동시에 숙연해짐을 느낄 수 있었던 춘사톡톡 모임이었다. 지금도 곳곳에서 독립유공자들에 대한 서훈과 그들의 공적을 알리는데 열정을 아끼지 않는 그분들에게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듬뿍 보내 드리고 싶다.

안수정(춘사톡톡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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