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오십 후반에 책을 읽는다. 철학책도 읽고 성경도 읽는다. 말년의 양식(late style)이나 구하자는 뜻에서다. 장자의 내편을 읽는데 ‘唯道集虛 虛者心齊也 ; 유도집허 허자심재야’라는 글귀가 마음 한 자락을 잡아 댕긴다. 특히 ‘빌 허(虛)’자가 확대경을 댄 것처럼 부풀어 오른다. 그래서 며칠 째 그 뜻을 새기고 있다.

네 마음을 하나로 집중 통일해서 사물事物을 귀로 듣지 말고 마음으로 들을 것이며, 마음으로 듣지 말고 기氣를 통해 들어라. 귀는 소리를 들을 뿐이며, 마음은 인상을 받아들일 뿐이지만, 기氣라는 것은 공허한 것으로서 모든 대상에 대응할 수 있다. 도道는 이 공허한 속에서 달성된다. 정신의 공허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심재心齋’다. ‘심재心齋’란, ‘마음을 굶긴다’는 뜻이다. 성경에 나오는 ‘심령이 가난한 자’라는 말과 같다 하겠다. 장자도 예수님과 비슷한 말을 하고 있다. 아니 실은 장자가 예수님의 말을 흉내 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여하튼, 송나라 사람 장자의 이 말에서 글자 세 개를 집어 들었다.

‘자심제子心齊’다. ‘唯道集虛 虛(者心齊)也’에서 ‘者心齊’의 ‘者’를 ‘子’로 바꾸어만 놓은 것이다. 3인칭을 1인칭 ‘나’에게로 겨냥했을 뿐이다. 이제는 삶을 ‘굶기는데’ 집중해야 할 나이다. 마음도, 몸도, 생각도, 혼도, 정신도 모두 굶겨야 한다. 굶기고 굶겨서 ‘텅 비’게 만들어야 한다. 철학자 강신주에 의하면, 장자의 이야기들은 고전철학이 아니라 ‘파라독스 우화’이며 ‘유머’란다. 그러니 내가 [子心齊]하여 ‘굶기고 굶겠다’는 말도 사실은 ‘파라독스paradox’인 셈이다. 허나, 그 파라독스에 도달하기 이전에 나는 먼저 ‘내 자신을 굶기는 일’에 오십 후반의 에너지를 집중해 볼 요량이다.

호모 헌드레드 Homo Hundred 시대다. ‘백 살에 날 부르러 오거든 전해라~’는 유행가가 공감을 얻는 걸 보면 백 살도 넘겨 살 듯하다. 그러나 오래 산다고 존엄한 인생의 후반기가 되는 건 아니다. 청춘으로부터의 해방과 몸으로부터의 자유를 향유하며 어른으로 늙어갈 용기를 길러야 한다.
 

허태수

저작권자 © 《춘천사람들》 - 춘천시민의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