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지만 없는 아이들 /  은유 / 창비 / 2021

있지만 없는 아이들이 있다. 부모에게 체류자격이 없다는 이유로 국가가 돌보지 않는 아이들. 부모는 외국인이지만 한국에서 태어났거나 아기 때 한국에 와서 초중고를 다녔거나, 다니고 있거나, 다닐 가능성이 높은 사람들, 바로 ‘미등록 이주아동’이다. 이들은 한국에서 유아, 청소년기를 대부분 보냈기 때문에 한국말을 쓴다. 그래서 부모의 나라로 돌아가지 못한다. 하지만, 한국에서 주민등록번호를 부여받지 못한다. 즉 한국 국민으로 인정 받지 못한다. 있지만 없는 존재다. 2만 명쯤 된다고 한다. 한국사회의 현실이다.

유엔아동권리협약에 의거 해 고등학교까지 교육받을 권리는 갖지만, 살아갈 자격은 없는 모순된 현실에서 ‘있지만 없는 아이들’이 자라난다. 대학 진학이나 미래를 설계하는 것은 물론, 코로나19 사태 초기 주민등록증을 제시하고 마스크를 사는 일부터 QR 체크인을 하고 식당에서 밥을 먹는 평범한 일상도 고난의 연속이다. 게다가 만 18세가 넘으면 말도 안 통하는 부모의 본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현실에 놓인 아이들. 의료보험이 안 되어 병원 가는 게 두려운 마리나(몽골), ‘왜 한국에서 사느냐’는 질문에 ‘당신은 왜 한국에 사는가? 저는 이곳에서 태어나 자랐으니까 여기에 산다’고 말하는 페버(나이지리아), 달리아(우즈베키스탄)는 백석 시인을 좋아하고 한국어로 시를 쓰며 국어 과목 성적도 학급 1등이다. ‘태어난 건 죄가 없는데 왜 차별당하고 고통받고 꿈도 못 이루고 살아야 하는지 솔직히 이해가 잘 안 돼요.’ 카림의 외침을 읽다가 문득 영화 〈가버나움(2019)〉이 겹치며 떠올랐다. 레바논 출신 나딘 라바키 감독이 레바논 난민 아이들의 충격적인 실태를 알리기 위해 만든 영화로 칸 영화제에서 기립박수와 함께 심사위원상을 수상했다. 신분증도 없고, 출생기록조차 없어 아마도 열두 살인 소년 자인의 외침, “나를 태어나게 한 부모를 고소합니다.” 더욱 가슴 아픈 것은 피고가 된 엄마의 말이었다. “나처럼 살아보기 전에는 누구도 나를 비난하지 못해요.” 

책 속 화자 중 한 사람인 이탁건 변호사는 ‘가장 어려운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지가 국가의 인권을 측정하는 지표다’는 말을 인용한다. 미등록 이주민들은 한국에서 오랜 시간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최선을 다해 살아왔다. 한국 사회 역시 이들을 필요로 했기 때문에 20년 넘게 살아온 것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이들을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인정해야 마땅하다. 

생각해보면 한국의 아동 청소년은 ‘지금 여기’를 누리지 못하고 ‘나중에’를 강요받는 사회적 약자들이다. 그런데 그 ‘나중에’조차 빼앗긴 아이들. 약자 뒤에 가려진 이중 약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자. 이 책을 함께 읽고 우리 곁의 깊은 슬픔을 느껴보자. 끝까지 슬퍼한 이들이 슬픔에 짓눌리지 않고 용감하게 말하는 슬픔을 이야기해 보자. 눈물처럼 짙은 계절 10월, ‘미등록 이주아동 이야기’를 기록한 은유 저자와의 만남을 기다린다.

“다른 존재의 운명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것. 이 능력을 잃어버리게 되면 결국 인간은 모든 것을 잃게 될 테니까.  박혜영, 《느낌의 0도》 중에서

한명숙(봄내중 수석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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