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 버스기사 김경종

 두 해 전이었을 것이다. 운전 중 도로에 쓰러져 있는 고라니를 보고 아찔하게 핸들을 돌렸던 기억. 사체는 멀쩡해 보였고 ‘어떻게 하지?’ 고민하다 멈췄을 땐 이미 멀리 온 뒤였다. 나는 용케 피했다 하더라도 누군가는 고라니를 타고 넘을 것이 분명했다. 몇 곳 검색을 하다가 시청의 자원순환과와 연결돼서 그 내용을 남겼다. 몇 분 후 자세한 위치를 묻는 낯선 전화를 받았고 다시 몇십 분 후 고라니 사체를 수습하는 사진을 문자로 받았다. 내가 보았을 때와는 달리 처참하게 터진 모습이었다. 그 이후로는 그 번호를 저장해 두었다가 로드킬을 당한 동물을 보면 간단하게 요약한 문자를 그 번호로 보내곤 하였다. 그리고 올해 초였을 것이다. 운전하는 반대편 도로에서 동물 사체를 수습하는 한 남자를 보았다. 빠르게 달리는 차들 사이에서 그도 위험해 보였다.

 야생동물협회 소속 김경종 씨. 몇 달 전에 요청한 인터뷰가 이렇게 늦어진 것은 그가 바빴기 때문이었다. 어쩌다 통화가 됐을 때, 그는 늘 출동 준비 중이었거나, 사체를 수습하고 있거나, 수습을 막 끝낸 참이었다. 오늘도 새벽부터 두 번 출동했다는 김경종 씨를 만났다. 잠 한숨 자지 못했다는 그는 여전히 출동 복장이었다. 

"춘천시를 운행하는 버스 운전기사에요. 대무기사죠. 본기사가 있고 대무기사가 있고 보조기사가 있어요. 2번, 4번 버스를 주로 운행하지만, 본기사의 휴무일이나 운행에 사정이 생기면 우선 투입돼요. 춘천에서 버스 탄 지는 3년 됐어요."

춘천시 버스 운전사 김경종 씨. 직업적으론 버스 기사가 맞지만 ‘위험에 처한 동물을 구조하거나 죽은 동물의 사체를 수습하는 일’이 그를 설명하는데 더 정확할 것이다. 그는 버스 공영제 등의 여러 이슈에 대해선 말을 아꼈다. 오늘의 주제인 동물 이야기로 얼른 화제를 전환했다.

"어린 시절 관악산 가까이에서 살아서 새, 다람쥐, 족제비를 키우며 컸어요. 시작부터가 동물과 친했죠. 그리고 바퀴를 좋아했어요. 바퀴 달린 건 다 좋아했죠. 버스 같은 대형차부터 화물차, 굴삭기 등 바퀴 달린 것의 면허증이 10개 정도 돼요. 이것저것 다 몰아봤죠. 운전을 하다 보면 지방을 많이 다니잖아요. 차에 치인 동물이 많고…."

Q.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나요?

"트렁크에 설치하는 랜턴을 항상 가지고 다녔어요. 장갑, 종이, 비닐, 상자가 항상 세트죠. 차를 세우고 랜턴을 키고 종이에 사체를 싸서 비닐에 담아요. 다시 상자에 담아서 제가 시간이 되면 청소지원센터에 가지고 가서 담뱃값이라도 드리고 부탁을 해요. 시간이 안 될 땐 상자를 도로 가장자리에 놓고 112에 전화를 하기도 하고요."

춘천은 그의 어머니가 미혼일 때, 일을 구하러 서울로 가기 전까지 가족과 함께 살던 곳이어서 가끔 어머니와 함께 놀러 오던 곳이었고, 혼자서도 가끔 오는 곳이었다. 그가 태어나서 주로 살던 서울을 떠나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제일 먼저 춘천이 떠올랐다 한다. 

"춘천에 온 지는 4년 됩니다. 오기 전에는 마사회에서 버스를 관리했어요. 그런데 경주말이 비싸잖아요. 가격이 수억대가 넘고. 과천이다 보니까 족제비나 너구리 등 야생동물이 내려올 때가 있어요. 말들을 보호하기 위해 주변에 약을 놓거나 동물에게 총을 쏘는 걸 보면서도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죠. 힘들었어요. 춘천의 대동운수에 자릴 알아보고 가족의 양해를 얻어 혼자서 먼저 내려왔어요. 2년 후에는 아내도 내려왔고요."

 Q. 지금은 운전하다가 동물을 발견하면 수습하는 수준이 아닌 것 같아요. 신고를 받으면 출동을 하잖아요. 119처럼요. 제 전화도 그렇게 받았고요. 그사이 어떤 과정이 있었나요?

"춘천에 와서도 예전처럼 상자를 가지고 다니며 보이면 수습을 했어요. 그런데 한번은 시간이 안 되어 그전처럼 길가에 놓고 112에 부탁을 해놨는데 돌아올 때 보니까 상자가 그대로 있는 거예요. 112에 다시 확인을 해 보니 협회에서 안 가져갔냐고. 아! 이런 일을 하는 협회가 있구나. 그래서 야생동물협회에 찾아갔고 더 본격적으로 하게 된 거죠."

야생동물협회라면 필자와도 인연이 있다. 영화 ‘다른 길이 있다’를 준비할 때 두루미를 더 자세히 관찰하고 싶어서 협회를 찾아갔고 협회의 소개로 강원대학교 야생동물구조센터를 방문해서 다친 동물의 치료와 방생 과정을 살펴본 일이 있었다. 아직 숨이 붙어 있는 동물은 구조하여 강원대학교 구조센터로 이송한다고 한다.

의암터널부근에서 발견된 다친 고라니

"한번은 강촌의 검단산 쪽에서 연락이 왔어요. 올무에 노루가 걸린 거죠. 이미 다리가 다 틀어지고 부상이 컸어요. 산은 정확한 위치를 찾는 것도, 수습해서 내려오는 것도 힘들죠. 다섯 시간을 넘겨 어렵게 구조해 병원에 이송했는데 다음 날 살지 못했다고…."

지난 일이어도 기억하는 그의 말과 눈에는 슬픔이 서린다. 다친 동물을 병원으로 이송한 다음 날은 항상 결과를 확인하는데, 잘 치료되어 살아났을 때의 기쁨은 말로 표현 못 한다고. 생명을 구한 기쁨을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내쳐서 인상적인 기억 몇 개를 청해 들었다. 그중 하나는 검둥오리에 관한 것이다.

행진하는 흰뺨검둥오리

 "6월에서 7월쯤 되면 검둥오리 새끼들이 나무에서 떨어져요. 그때부터 어미를 따라 산에서 물가까지 행군이 시작되는 거죠. 외곽도로 가장자리로 검둥오리 새끼들이 지나간다는 신고를 받고 달려갔어요. 차들이 쌩쌩 달리고 정말 위험한 상황이었죠. - 빠르게 달리는 차도에서 동물을 수습하고 있는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 바퀴에 어린 애들이 다 밀릴 수 있어요. 검둥오리의 뒤에서 느리게 차로 에스코트를 하는데 물가까지 거의 2km, 두 시간 반 정도 걸렸어요. 그때 운전자들에게 욕이란 욕은 다 먹었죠. 교통을 방해한다고요. 그래도 다 살았어요."

김경종 씨는 동물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왼쪽 어깨 회전근을 다치기도 했다. 위험한 일이고 혼자서 다 할 수 있는 일도 아니어서 동물을 사랑하는 아내도 따라나선다고 한다. 이러면서까지 얼마나 많은 동물 사체를 수습하는 것일까. 

"하루에 여섯 번, 일곱 번 나갈 때도 많아요. 1년이면 2천 번이 넘는 거죠. 버스 타는 시간 빼고는 늘 출동해요. 전화는 한 밤에도 오고 새벽에도 오니까요. 그래서 술을 먹고 싶으면 무알코올을 마셔요. 출동하고 남는 시간에 밥을 먹고 잠도 자죠. 이게 동물만 위험한 게 아니에요. 치인 동물이 그 자리에 있으면 피하려다 2차 사고도 많이 일어나죠. 우리 운전하는 사람을 위해서도 동물이 도로에 누워있어서는 안 돼요."

시민이 신고해 주는 일은 고맙지만 김경종 씨 혼자서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님도 분명하다. 그가 없다면 차에 받힌 어떤 동물은 바퀴에 깔리고 깔려 흔적 없는 생을 도로에서 마감하는 게 될 테고 우리는 자주 그 위를 달리게 될 것이다. 반대급부를 바란 일이 아니어도 관의 지원이 절실해 보인다. 인터뷰 중 또 신고가 들어왔다. 마음 급한 그에게 마지막 말을 받았다.

"동물들은 우리에게 말만 못 할 뿐 똑같아요. 잘못한 것도 없는데 인간 때문에 죽잖아요. 치인 동물을 보면 신고해 주시고 도롯가로 옮겨주시면 좋겠어요. 사람은 자연과 공존해야 해요. 그러자면 사람이 더 양보해야 해요."

 늦은 밤 버스 운전 중에 동물의 사체와 마주한 적이 있다고 한다. 학곡리 쪽이었고 두 명의 승객께서 양해를 해 주어 사체를 수습할 수 있었다고 한다. 김경종 씨는 그때 기다려준 승객분께 다시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조창호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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