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미 (춘천여성협동조합 이사장)

춘천 퀴어축제를 반대하는 국민청원이 시작되었다는 소식을, 반대를 동의하는 듯한 지인을 통해 들었다. 워낙 친분이 있는 사이라 망설이다가 나는 그 축제에 후원을 했다고 말했다. 불현듯 2017년 춘천에서 진행한 퀴어라이브 행사가 떠올랐는데, 장소 대관조차 되지 않아 모임 장소를 찾고 있던 주최 측에 장소를 제공해주었다는 이유로 마더센터는 그로부터 6개월도 넘게 시달렸다. 당시 임신 7개월에 배가 불렀던 나는 전국적으로 퀴어를 반대하기 위해 멀리서 피켓팅을 하러 온 아저씨가 우리 건물로 진입하려고 해 1층 현관을 잠그고 있어야 했다. 무서웠다. 신체적 가해, 난동이 벌어질 거 같은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공간을 대여해주는 것에 대해 잠깐 후회했다. 

이성애자인 나는 ‘엘라이’이다. ‘엘라이’는 성소수자의 친구들이다. 내 주변에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아마도 동성애자, 트렌스젠더를 고민하는 이들이 있었던 거 같다. 그런 고민들은 너무나 비밀스러워서 지하의 소문처럼 떠돌기만 했다. 대학교에서 교지 편집부 기자로 활동하면서 2000년에 퀴어페스티벌 취재를 하러 간 적이 있다. 억눌려있는 이들이 자신의 얼굴을 내밀고 집단으로 행진을 하는 퀴어퍼레이드가 자못 놀라웠다. 두렵지만 자유롭고, 집단의 힘으로 내 존재를 인정받은 자들의 해방된 얼굴이었다. 우리도 그 행렬에 끼어들어 그들의 해방을 축하해주었다. 그 퀴어축제에서는 한국의 성소수자들을 위한 이민설명회도 개최했는데, 설명회장에서 한 여성이 우리에게 먼저 아는 척을 했다. “한림대생이세요?” 대학 로고가 들어간 가방을 가지고 갔는데 자신도 한림대생이라며 너무 반가워했다. 더 당황하시기 전에 이반이 아니라고 말씀드렸더니 흠칫 놀라서 “아, 예….” 그녀는 말끝을 흐리며 사라졌다. 미안했다. 너무 놀라지 않았을까? 지지한다고, 응원한다고 바로 말해줬어야 했는데, 우리도 너무 당황했었던 거 같다. 시간이 아주 오래 흘러 여고 동창 중 한 친구가 성소수자여서 이민을 갔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우리는 지정성별을 통해 남·여라는 테두리 안에 안정된 사회에 살고 있다고, 우리 모두는 같다고 생각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니다’. 퀴어페스티벌을 반대하는 이들은 ‘T팬티’를 운운하며 음란하다고 퀴어를 비하한다. 기자회견장에 가지고 나온 사진들은 내가 봐도 혐오스러워서, 저런 사진은 어떻게 편집 된 거지? 자못 궁금하다. 퀴어는 우리와 같이 시민이다. 같이 살아가는 존재이고 종교의 힘이나 제도적인 틀로 개조될 수는 없다. 조승우의 열연으로 유명한 뮤지컬 <헤드윅>에서도 성별정체성이 모호한 젠더퀴어가 주인공인데, 이토록 유명 배우들이 출연한 퀴어영화에는 그토록 열광하면서, 왜 우리의 주변의 친구들은 살피지 않을까. 살면서 다양한 가치관과 기준들을 알게 되면서, 하나의 이슈에도 양면을 보려고 노력한다. 20대에 굳게 믿었던 기준들이 40대가 되니 철학보다는 사람의 입장에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사람을 혐오하고 존재를 부정하는 행위를 반대한다. 춘천처럼 두 다리 건너면 모두 안다는, 이 좁은 동네에서 그래서 내 입장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불편하지만 나는 말한다. 나는 ‘엘라이’입니다. 나는 퀴어의 친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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