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백 년 도읍지를 필마(匹馬)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依舊)하되 인걸은 간데 없네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고려 후기 절의를 지킨 세 학자인 목은(牧隱) 이색(李穡),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 야은(冶隱) 길재(吉再)를 일컬어 고려삼은이라 한다. 이 시는 야은 길재가 옛 도읍지 개성을 지나면서 옛 왕조 고려를 그리며 읊은 시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과연 산천(山川)은 의구(依舊:옛 모양과 변함이 없음)할까? 말도 많고 탈도 많던 삼천동과 서면 덕두원리를 잇는 삼악산 호수케이블카(로프웨이)가 지난 8일 운영을 시작했다. 560억 원에 이르는 민자사업으로 추진해서 20년 후 시에 기부채납하는 방식으로 추진된 사업이다. 삼악산 호수케이블카는 의암호 구간 2㎞, 산악 구간 1.6㎞로 총 3.6㎞에 이르는 국내 최장 길이의 로프웨이라고 자랑한다. 서울공화국을 위해 소양강댐, 춘천댐, 의암댐이 만들어져 강(川)이 변한 적은 오래되었으니, 오히려 삼악산 로프웨이는 뒤늦은 감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드디어 산천 모두 의구하지 않게 되었다. 

지금이 6·70년대 박정희식 개발 시대도 아닌데 춘천은 여전히 공사 중이다. 중도 레고랜드가 그렇고 삼악산 케이블카가 그렇다. 개발과정에서 문화유산이 발견되어도 놀이시설이 건설되는 것도 이상하지만, 그것에는 반대하면서도 삼악산 로프웨이에 대해서 조용한 것도 이상하다. 

기왕 만든 것이니 잘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왜 없겠냐만, 기대 못지않게 걱정도 드는 게 사실이다. 그중에 제일 큰 것은 산천의 변화를 넘어선 훼손과 오염이다. 환경단체의 반대에 부딪혀 케이블카 종점이 산 정상이 아닌 곳에 틀어져 앉았다지만, 그렇다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지 않은가? 석기시대 유물과 유적은 보호되어야 하고, 산과 더불어 살아있는 생명체인 동식물은 무시되어도 된다는 말인가. 생명이 먼저다. 서양의 사고에는 인간을 자연에서 분리해 대립 축에 놓지만, 동양에서 자연은 인간을 포함한 자연이다. 그래서 인간은 자연의 일부인 것이다. 지속가능한 개발이라는 말도 있다시피 개발과 보존은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다.  

시나 건설사는 로프웨이가 개장되면 연간 127만 명이 춘천을 방문해 500억 원대 경제적 파급 효과가 이어질 것이라고 선전한다. 알다시피 무엇을 건설하면서 경제적 잠재효과, 고용효과는 부풀려 과장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장밋빛 전망은 결과 없이 예측으로만 끝날 때가 많다.

그들이 예측한 1년에 127만 명이 방문하려면 연중무휴로 계산해도 하루 평균 약 3천 500명이나 된다. 그 인원 모두가 케이블카를 타고 오르내리기만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중에는 의암호 구경을 넘어 삼악산 등산을 즐기는 등산객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케이블카로 늘어날 등산객에 대한고려도 없고, 시설 인프라는 아직도 준비되지 않았다. 실제로 산 중턱의 케이블카 종점에서 삼악산 정상이나 전망대 오르는 길은 올해 3월에 착공했는데도 아직도 공사 중인지 내년 3월까지 공사할 거라는 안내판이 막고 있다. 케이블카를 개장하면서 삼악산 등산 관광을 연계할 생각을 안 한 걸까, 못한 걸까? 현재로선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갔다 되돌아오는 의암호 구경이 전부이다. 등산에 대한 배려가 없으니 시너지도 그만큼 줄어들 것이다. 인프라가 전혀 없는 업체 위주의 케이블카 정책이지 시민을 위한 삼악산 관광정책이 아니다. 

말이 나와서 덧붙이자면, 수도권의 많은 관광객이 춘천의 산을 찾음에도 불구하고 시의 등산에 관한 정책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춘천에 소재한 산중 삼악산은 오봉산과 함께 산림청이 선정한 100대 명산에 들어가 있다. 춘천과 접해 있지만 홍천이 관리하는 같은 100대 명산 가리산에 가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아니 팔봉산이라도 가본 사람은 춘천의 산이 다른 시·군이나 도에 비교해 얼마나 관리가 안 되고 있는지 안다. 춘천 인근의 산을 등산하다가 안내 표시판이 부실해 길을 잃거나 등산로가 정비되지 않아 불편하다는 사람들이 많다. 케이블카가 다니면 뭐하나? 삼악산의 나무로 된 계단은 오래되어 썩어 있고, 밧줄을 지지하는 봉들은 뽑힌 채 방치되어 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고작 이용요금이 비싼지 아닌지나 따지고, 시정 책임자나 시민 대표자인 의원들조차 어떻게 하면 서울공화국 사람들의 돈을 더 빼먹을지에만 골몰한다. 돈벌이 정책에 자연, 휴식, 여행, 등산, 힐링은 없다. 이제 산천은 의구하지 않다. 사람들도 간데 없다. 케이블카만 있고 삼악산은 없다. 태평하던 옛 삼악산이 벌써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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