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태 (춘천 금산초 교사, 현 전교조강원지부 정책실장)

 해외 스트리밍 앱에서 방영하고 있는 오징어게임이 연일 화제다. 넷플릭스를 사용하는 84개국에서 1위를 기록하고 있다고 한다. 프랑스에서는 영화에 나오는 의상과 소품을 이용한 체험관을 운영하는 데 입장하는 줄이 300미터에 달한다고 하는 뉴스를 보았는데 체험관 입장을 기다리고 있는 프랑스인들의 상기된 표정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도대체 이 드라마는 무엇을 말하길래 전 세계 사람들이 이토록 열광하는가.

 이 드라마는 경쟁에 대한 잔혹한 서사이다.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하는 절박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괴기스러운 장소에 초대받아 아이들도 즐겨할 만한 단순한 게임을 한다. 중요한 건 게임의 승자가 모든 사람의 몫을 가져간다는 것이다. 짐작하시는 분들도 있고 이미 보신 분들도 있겠지만 목숨을 걸고 하는 게임의 장면 장면마다 각자도생과 약육강식의 인간 사회에 대한 잔인하고 통렬한 풍자와 비판이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게임에 참가한 이들은 눈앞에 놓여있는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의 힘으로 이겨내기 위해 발버둥 치지만 결국 승자독식이라는 게임의 규칙과 위력 앞에 굴복할 수밖에 없다. 물론 승리하기 위해서 때로는 우정을 맺어야 할 때도 있고, 인내해야 할 때도 있고, 노인의 고귀한 지혜가 필요할 때도 있다. 그러나 우리네 세상살이처럼 때로는 믿었던 친구를 배신해야 할 때도 있고 승리를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야 할 때도 있다.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서 모든 것을 합리화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몸서리가 쳐질 때도 있다.  

가장 인상적이고 충격적이었던 장면은 암흑 속에서 저러다가 밤새 진행될 수도 있겠다 싶은 보이지 않는 적을 향한 명분도 없고 규칙도 없는 싸움이었다. 이 처절하게 가슴 아픈 싸움을 멈춘 건 망루에 올라가 “이제 그만해, 이러다가 우리 모두 다 죽는다.”라고 외친 한 사람의 외마디 절규였다. 불이 켜지고 싸움이 멈췄을 때 나는 학교를 떠올렸다. 아무도 가 보지 못했으며 누구나 오르지 못하는 이름 모를 봉우리를 향해 서로를 밟고 올라서는 일부터 배워야 하는 우리 학생들. 입시체제에 종속되어 신음하는 우리 교육에도 누군가는 이제 멈추라고 소리내어 외쳐야 하지 않을까. 달고나를 꼭 모양대로 자르지 않아도 입속에서는 모두 달콤한 맛이 나는 것처럼, 우리 아이들에게 삶이란 본래 실패와 성공이 반복되면서 천천히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가르쳐주어야 한다. 줄다리기를 이기는 방법은 힘이 아니라 서로에 대한 믿음이라고 알려주고, 진 사람들에게는 반대편에서 다시 한번 줄을 당길 기회를 줘야 한다고 말해야 한다. 해가 지면 친구에게 자신이 따낸 구슬을 나눠줌으로써 내일도 나랑 놀아야 한다고 새끼손가락 걸고 약속하는 믿음직한 깐부*를 길러내는 교육을 해야 한다. 

이곳에서는 참가자의 과반이 찬성하면 게임을 그만둘 수 있지만, 참가자 어느 누구도 그 제안을 다시 하지 못한다. 내가 우승상금의 주인공이 될지도 모른다는 탐욕 때문이다. 허공에 매달린 탐욕 때문에 참가자들은 자신의 이름을 말하지 못하며 상대방의 이름을 부르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우리 아이들은 서로의 성적 대신 이름을 부르며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게임에 생존해 다시 만날 날을 꿈꾸기보다는 지금 현재 온전히 만나는 교육을 해야 하지 않을까. 오징어게임에 아이들이 괜한 발걸음을 하지 않도록 어른들이 지금 여기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먼저 바꿔야 한다.

*깐부: 딱지치기, 구슬치기 등 놀이를 할 때 같은 편을 의미하는 속어로, 딱지나 구슬 등도 공동관리하는 한 팀을 의미한다. (=깜보, 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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