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문학] 타인을 대하는 자세
[삶과 문학] 타인을 대하는 자세
  • 심현서 시민기자(소설가)
  • 승인 2021.10.19 09: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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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현서 시민기자(소설가)

기쁨을 나눴더니 질투가 되고, 슬픔을 나눴더니 약점이 되더라.

 명언을 비튼 새로운 명언이 더 와 닿는 요즘이다. 속담에 조상들의 삶의 지혜가 담겨있듯 그 또한 현대인들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산물일 것일 테니 말이다. 

아들의 친구가 부모의 이혼과 아빠의 재혼을 겪으며 힘들어 하고 있는 것을 우연찮게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아이는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일부분 나의 청소년기를 마주하는 것 같아 그 아이의 상황이 더 아팠고, 나의 작은 호의에도 큰 위로를 받는 아이에게 오히려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한동안 그 아이는 나의 마음을 크게 흔들었다. 지인과 오랜만에 만나서 그런 나의 마음을 털어놓는데,

“걔두?!”

지인은 지겹다는 표정을 지으며, 앙칼진 목소리로 단 한 마디를 내뱉으며 내 말을 끊어 버렸다. 그녀의 목소리가 평소에도 그랬다고 치려 해도, 그녀는 지금 술에 취해있다고 이해하려 해도 적잖이 상처가 되었다.

십여 년 전, 한 장애아의 엄마가 쓴 글을 중학교 교과서에서 보았는데, 글의 요지는 사람을 장애인, 비장애인 나눠서 부르지 말고, 장애인, 미(未)장애인이라고 나눠서 부르자는 것이었다. 사람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며 결국 누구나 다 장애인이 된다는 거다. 이건 너무 억지스러운 주장이라 생각했지만, 그 엄마가 겪었던 편견과 차별의 무게가 얼마나 그를 짓눌렀으면 그런 주장을 할까 하는 마음이 들어, 그 글이 오래도록 잊히지 않았는데 지금 내 심정이 딱 그러했다.

‘그래! 내 자식도 이혼 가정에서 자랐는데, 친구도 그렇다더라. 애들이 끼리끼리 노나 보다. 그래서 껍데기만 온전해 보이는 너의 집은 언제까지 그 모양일 것 같으냐. 그래서 이혼 가정에서 자란 내 자식이 잘되나, 온전한(?) 가정에서 자란 네 자식이 잘되나 어디 한 번 두고 보자’라고 내지르고 싶었지만 참았다. 

 이제 나도 불필요한 언쟁이 피곤한 나이가 되었다. 평소 타인에 대한 공감과 이해가 가득한 사람이라 여겼고, 그녀는 관련 공부까지 하고 있었다. 그랬기에 내 마음을 털어놓은 건데, 오히려 그녀의 기저의식 속엔 편견과 차별이 여느 사람들보다 더 크게 자리한다는 걸 단 한 마디로 알 수 있었고, 그래서 실망감은 더 크게 다가왔다.

그러나 미장애인을 주장한 엄마의 말처럼 그것을 가리키는 용어를 바꾼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을 것 같다. 현대 사회는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들어 보겠다고 비장애인, 한부모 가족 등의 용어를 만들어서 사용하며 끝없이 캠페인을 벌인다.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들어 보겠다는 사회의 노력은 대견하다. 그러나 우리는 단어만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표정이나 몸짓, 말투 등의 비언어적 표현들로 더 많은 이야기를 하며 살아간다. 그런 비언어적 표현은 그 사람의 내면을 숨길 수 없기에 입으로 말하는 단어보다 더 정직하다. 용어를 바꾸며 차별 없는 세상이라고 말하기보다는 사람들의 내면 깊이 자리 잡은 의식의 변화가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나와 다른 사람을 진심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자세. 그래서 세상에 문학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입으로만이 아닌 진정으로 성숙한 사회를 나는 아직도 기대한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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