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의 신석기시대 유적

신석기시대 주민의 흔적은 여러 곳에서 확인되고 비교적 이른 시기의 유적으로 교동 혈거유지가 있다. 당시, 춘천 일원에서 삶을 영위하던 주민의 삶을 파악하기 어려운 것은 고고학적 해석을 위한 다양한 물질 자료를 확보하기 어렵기도 하지만 과거 삶을 복원하기 위한 다양한 조사 방법을 시도하는 것에 대한 의지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신석기시대를 범세계적으로는 ‘농사’와 ‘목축’이 발생하는 현상에 주목하여 ‘신석기 혁명’이라 부른다. 그리고 ‘도시의 발생’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것은 지금의 중동지역 즉, 메소포타미아에서 시리아, 팔레스티나까지의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서 발생한 것이다.

 춘천 지역에서 살던 주민은 ‘사냥(수렵)·고기잡이(어로)·채집’을 하였을 것이다. 지금의 강촌나들목 부분이 먹거리를 가공하여 조리하던 ‘한데 불 땐 자리(야외노지 野外爐址)’가 확인된 바 있다. 이때 주민의 수는 많지 않았고 주민들의 먹거리는 강, 들, 산지에서 구할 수 있는 어류와 조개류, 야생동물, 견과류였을 것으로 짐작할 뿐이다.

1) 신매리 일원 공중사진, 2) 신석기시대 토기, 3) 신매리유적 공중사진, 4) 2호 집자리, 5) 1호 집자리

춘천 신매리유적

그런데 춘천에서 가장 주목되는 유적은 춘천 신매리유적이다. 문화재청은 춘천 지역에서 비교적 보존상태가 좋고 선사시대 상황을 잘 파악할 수 있는 지역으로 현 춘천 신매리유적을 2007년 11월 14일에 사적 제489호로 지정하게 된다.

사실 지정 당시에는 유력한 후보지로 신매 3리 일원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하였으나 신매리 일원 토박이들이 주로 사는 현 지역에 지정된 것에 대해서는 의문스러운 것이 많다. 여하튼 사적 지정 이후, 춘천시는 문화재청의 지원으로 여러 번 용역을 실시하였지만, 유적 공원 조성에 대한 청사진은 오리무중이다.

신매리유적에서는 집자리 2기, 구덩이 6기, 한데 불 땐 자리 1기, 도랑 유구 1기가 확인되었다. 하지만 북한강변에 블루베리 경작으로 여러 기가 교란 파괴된 것이 확인되고, 남쪽 10번지 일원에서도 집자리가 확인되어 제법 큰 마을이었을 것이다.

유물은 ‘서해안식’이라고 부른 바닥이 뾰족하고 몸체에 빗살문을 새긴 토기 편들이 주로 확인되었다. 석기도 2점이 확인되었지만 만드는 과정에 있던 돌도끼와 숫돌 편이다. 집자리에서 수습된 숯을 방사성연대측정 값을 보면, 기원전 3,600년경에 조성된 것으로 생각된다.

춘천 신석기시대 주민의 삶은?

춘천지역에서 확인되는 신석기시대 집자리는 수가 많지 않다.

하지만 이 당시는 계급이나 계층이 없는 삶을 영위하였다. 

앞으로 당시 주민들의 삶 중에 그들의 먹거리를 규명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 참고자료
국립문화재연구소, 2012, ≪한국고고학 전문사전-신석기시대편-≫, 예맥문화재연구원, 2021, ≪春川 新梅里遺蹟Ⅲ≫.

심재연(한림대학교 한림고고학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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