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이궁과 도청 아래로 펼쳐진 본정통(本町通)

“공무를 마치고서 활연히 멀리 바라보면 강물의 흐름에 쉬고 닭 밝음에 시를 읊조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안개 낀 아침 맑은소리로 시를 읊고, 달 밝은 저녁에는 가슴 속이 맑고 깨끗하여져 몸이 세상을 초월하여 황홀하여진다. 당의 맑은 경치로 볼 때 마땅히 이름은 요선이어야 한다. 요선이 아닌 다른 이름으로 지을 수 없다.” 

조선 중기 문신인 유경종은 강원도에 부임했을 때 봉의산 자락에 세워진 요선당에 대해 이같이 썼다. 

요선동의 아름다움에 대한 글과 시는 적지 않다. 시인 이명한도 요선당에 서서 “소양강 물은 기름같이 푸르르니/동짓달 중순도 한가위 같구나”라고 했다. 이 밖에도 엄황, 오숙, 이준, 박신, 유항, 이민구, 오수채, 홍이상, 박태보, 오도일 등 조선의 여러 문신들이 요선당과 그 옆자리에 부사 엄황이 1648년 세운 객사인 문소각에서 주변 풍광에 찬사를 보냈다.* 

나중에 이 자리에는 고종이 피난처 삼아 지었던 춘천이궁이 지어졌다. 1869년 문소각은 24칸 규모로 확대되었고 1888년 조양루와 위봉문이 지어지며 이궁이 모습을 갖췄다.** 이때 요선당은 헐렸다. 1896년 이궁 옆에 강원도청이 세워졌다. 

이궁과 도청을 머리에 이고 그 주변으로 기와집과 초가가 빽빽이 들어앉았다. 아래로는 장터가 펼쳐졌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사람들은 이곳을 본정통(本町通, 혼마치도오리)이라 불렀다. 중심거리라는 뜻이었다. 이곳에서는 1919년 3.1운동이 일어났다. 여기는 지금 요선동 상점가로 변모했다. 

맛집 가득 요선동으로 내려오는 예술의 신 

1975년까지는 춘천시외버스터미널이 있었다. 터미널 배후상권이자 1956년 세워진 요선시장 주변으로 음식점이 빼곡하게 들어섰다. 터미널이 헐리고 그 자리에 인성병원이 세워진 후에도 요선동 상권은 영화를 거듭했다.

요선시장과 요선동 상점가에서는 현재 130여 개의 점포가 영업 중이다. 특히 음식점이 많아 직장인들의 회식 장소로 인기다. 수십 년 된 식당들은 줄을 서서 맛집 행렬을 이어가고 있다. 기자들의 해장 메뉴인 매운 짜장면집 대화관, 생선찌개 맛집 속초식당, 집밥 같은 맛을 보러 손님들이 줄을 서는 진미식당과 강릉집, 수랏상, 예술가들의 아지트 평창이모집, 고기 맛이 일품인 일흥불고기, 전통있는 횟집 이억조 등이 오래된 맛집이라 소문나 있다. 전통방식으로 국수 만들기를 고집하는 요선제면은 요선시장의 터줏대감이다.

신선이 머물 듯 황홀한 경치를 지녔던 요선동은 예술가들의 공간이기도 하다. 지금은 몇 개 남지 않았지만 악기 판매점과 표구사, 미술용품 판매점이 즐비했다. 이곳은 음악인과 미술인들이 늘 북적거리는 동네였다. 50년이 넘은 춘천커피는 예술가들의 휴식공간이었다. 가난한 예술인들은 춘천커피의 달달한 커피와 서비스로 주는 삶은 계란으로 배를 채웠다. 

요선동은 요즘 다시 예술인의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 제17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서 한국영화 장편 부문 작품상을 받았으며 마이미스트 유진규의 예술 인생을 다룬 영화 ‘요선’은 요선시장과 요선동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는 요선예술시장으로 뜨거워지고 있다. 춘천지역 생활예술인과 전문예술인의 모임인 모두의 생활예술협회가 요선시장 2층과 3층 빈 공간을 활용해 매월 예술마당을 펼치고 있다. 

음악인들이 운영하는 카페 ‘투투’가 요선동에 새바람을 넣고 있으며, 이들은 요선동의 유휴공간을 활용해 신개념 전시를 선보이고 있기도 하다. 

한때 신비로운 아름다움이 가득했던 요선동, 그곳에 바야흐로 예술의 신이 내려오고 있다.

김효화(춘천원도심 상권르네상스 사업단장)

>> 요선시장 이야기 끝(다음 육림고개 이야기)

* 심창섭의 《요선당/문소각의 명칭에 대한 재조명》, (2011) 참고
** 허준구의 《춘천100경⑦ 춘천이궁 문소각》, (2021)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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