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살롱] DJ 최인의 로큰롤스타 이야기 (1)
[문화살롱] DJ 최인의 로큰롤스타 이야기 (1)
  • DJ 최인(한국방송디스크자키협회 정회원)
  • 승인 2021.10.26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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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큰롤 50년 역사를 빛낸 50인의 거목들

1. 척 베리(Chuck Berry)

1926년 미국 세인트루이스 태생으로 로큰롤의 작곡기법과 기타연주의 전형을 제시한 대가로 역사에 기록된다. 흑인이면서도 백인 컨트리음악의 요소를 결합한 곡 <Maybellene>으로 로큰롤 흑백시대를 개척했다. 유명세를 탈 때 나이 30살이었으면서도 50년대 아이젠하워 대통령 시대를 살아간 10대들의 비상 욕구와 꿈을 담은 노랫말을 썼다. 기타를 연주하며 취한 오리걸음이 그의 트레이드 마크. 한창때 미성년자 성추행으로 투옥되면서 전성기를 마감했다. 불운으로 점철된 인생이었지만 ‘72년에 돌아와 <My Ding-A-Ring>으로 생애 첫 전미차트 1위에 올랐다. 비틀스, 롤링 스톤스, 비치 보이스 등 많은 60년대 록밴드들에게 영감을 준 인물로 대표작은 <Johnny Be Good>, <Sweet Little Sixteen>이며, 비틀스의 4집 앨범 ‘For Sale’에 실린 <Rock And Roll Music>도 그의 작품이다.

2.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

‘로큰롤의 제왕’이란 칭호가 말해주듯 초기 로큰롤 영웅이자 50년대를 대표하는 최고의 스타. 

’54년도 가난 때문에 이주했던 흑백의 혼합도시 멤피스의 선레코드에서 <That’s All Right Mama>를 취입한 것은 로큰롤 시대를 연 결정적 사건이다. 이후 메이저 레코드사 RCA 빅터로 옮겨 ‘50년에 발표한 곡 <Heartbreak Hotel>로 ’엘비스 현상’을 만들었다. 준수한 외모와 기성세대의 반감을 산 과격한 하반신 율동으로 당대의 청춘을 사로잡았다. 더불어 가스펠과 컨트리 등 흑백의 요소를 갖춘 특출난 음색과 가창력은 그를 슈퍼스타로 만든 원천이었다. “엘비스가 나타날 때까지 아무것도 내게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존 레논의 이 한마디는 엘비스가 어떤 존재였는가를 함축한다. 다수의 할리우드 영화로도 일세를 풍미했다. ‘67년 독일에서 만난 프리실라와 결혼했으나 6년만인 ‘73년에 이혼했으며, ’77년 멤피스 소재의 그레이스랜드 저택에서 42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대표곡은 <Hound Dog>, <Love Me Tender>, <Burning Love> 등이 있다.

3. 버디 홀리(Buddy Holly)

검은 뿔테의 안경, 마른 체구, 평범한 인상의 소유자로 엘비스 프레슬리처럼 섹시하지 않아도 스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인물로 초기 로큰롤 뮤지션 가운데 드물게 밴드 크리케츠(Crickets)와 솔로 활동을 병행했으며, 곡도 직접 쓴 천재였다.

1936년 텍사스 러복에서 출생했고 멕시코의 리듬과 결합한, 이른바 텍스멕스 사운드를 로큰롤에 이식했다. 작곡뿐 아니라 <Peggy Sue>에서 딸꾹질로 노래하는 등 여러 측면에서 로큰롤의 창의성을 인정받았다. 이 곡 외에도 <That’ll Be The Day>, <Maybe Baby>를 크게 히트시켰다. ‘59년 2월 3일 비행기 추락으로 리치 발렌스 등과 함께 22살의 나이에 사망했다. ‘72년 돈 맥클린은 50년대의 순수성을 상실한 60년대의 음악을 비판한 곡 <American Pie>에서 버디 홀리가 죽은 날을 ‘음악이 죽은 날’로 묘사하며 그를 기렸다. 

DJ 최인(한국방송디스크자키협회 정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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