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e's story] 중앙로67번길 54번지에서 키우는 그녀들의 꿈
[She's story] 중앙로67번길 54번지에서 키우는 그녀들의 꿈
  • 탁운순 (강원이주여성상담소장)
  • 승인 2021.10.26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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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운순 (강원이주여성상담소장)

2007년, 열아홉 살의 나이로 결혼한 지 한 달 만에 늑골 18개가 부러진 채로 사망한 ‘후안마이’의 죽음이 있은 지 10여 년 만에 정부는 전국에 이주여성전문상담소를 개소하기 시작했다. 강원도의 이주여성상담소는 전국에서 여덟 번째로 문을 열었다. 지난 4월 개소 이후 현재까지 1천745건, 월평균 약 250건의 상담이 이루어졌다. 대부분의 상담은 가정폭력을 전제하지만, 그 속에는 이주여성들의 불안정한 체류 신분이 있으며 이것들이 여성들을 더욱 취약한 상태로 만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난 2019년에 이주여성에 대한 우리의 민낯을 보여준 전남 영암의 베트남 이주여성 무차별 폭행 동영상 사건이 있다. 피해자인 이주여성은 입국한 지 10여 일 만에 폭행이 시작되었으나, 경찰에 신고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F6 비자로 들어온 여성은 입국 최초에는 90일까지만 체류가 보장되고 대한민국에 계속 체류하기 위해서는 90일 안에 체류를 연장하는 절차를 밟아야 하는데 이때 한국인 남편이 신원보증을 하지 않으면 체류 연장 자체가 불가했기 때문이다. 여성은 안정적인 체류 연장을 위해 남편의 폭행을 감당해야만 했다.

상담소에 첫 번째 상담 전화가 걸려왔다. 멀리 K시에 거주하는 이주여성이었다. 여성은 암에 걸린 남편이 사망하면 자신의 체류 신분이 어떻게 되는 것이냐며 전화했다. 1995년 국제결혼으로 이주하였으나 25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여성의 체류 신분은 F6 비자 즉, 국민의 배우자 신분이었다. F6 비자, 국민의 배우자란 단어 그대로 한국 남자의 배우자 신분으로 있을 때만 유지되는 체류 신분으로 남편이 사망하거나 다른 일로 결혼이 중단되면, 몇 번의 체류 연장을 거쳐 본국으로 송환되거나, 아니면 상당 금액의 소득 증빙을 하여 국적을 취득해야만 대한민국 거주가 가능하게 된다. 지방에서 기초수급자로 살고 있는 이주여성에게 남편 사후 국적취득을 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그 외에도 상담현장에서 보면 국제결혼으로 입국한 지 10여 년이 지났어도 F6 비자를 연장하며 살고 있는 이주여성들을 만날 수 있었고 불안정한 체류 신분을 가진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한국인 남편과 가족의 영향력이 매우 막강한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렇게 국적취득 기회를 얻지 못하는 여성들의 대부분은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일을 해야 하거나 입국하자마자 자녀들을 낳고 돌보느라 또는 시부모를 간병하느라 한국어를 공부할 기회를 놓친 사람들이었다. 

여러 달의 고민 끝에 강원이주여성상담소의 첫 번째 사업목표는 이주여성들이 안전하게 정착할 수 있는 꿈을 살려보는 쪽으로 계획했고 그 첫 번째 사업이 ‘날아올라 일요한글교실’이었다. 지난 8월 개교한 일요한글교실은 매주 일요일 두 시부터 네 시까지 이주여성들을 대상으로 한국어 수업을 한다. 

일요한글교실 개교 이후 단 한 번도 결석한 적이 없는 쿠옌씨는 내년에 간이귀화를 신청하여 국적을 취득하는 것이 목표다. 쿠옌씨는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주6일 닭공장에서 일한다. 하노이에서 더 들어가는 광산지역에서 태어난 그녀는 가난으로 중단된 공부를 다시 할 생각이다. 그녀는 베트남에서 약학전문학교에 다니다 중퇴했다. 올가을은 유난히 비가 많이 내린다. 중앙로 67번길 54번지에 위치한 ‘날아올라 일요한글교실’수업이 끝나자 여성들이 우산을 받고 길을 나섰다. ‘날아올라 일요한글교실’을 통해 이주여성들의 꿈이 되살아나기를 바라고 우리 사회가 가진 결혼이주여성에 대한 부정적, 차별적 인식에도 변화가 있기를 바란다. 끝으로 일요한글교실이 가능하도록 자원하여 강의를 맡아주시는 성수고등학교 김홍주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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