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삼경의 아뜰리에 14

혹성 B612, 이 행성에는 지구보다 많은 인간들이 산다. 어쩌면 지구에서 살다가 죽은 사람들이 죄다 있는지도 모르지만, 정확히는 지구상에서 이루지 못한 꿈과 이야기들이 꿈대로 이야기대로 모여 살아가는 곳이다. 또한 그곳은 어린아이의 무구한 동심과 함께 일의 핵심과 반전의 재미를 아는 꽃과 여우가 함께 산다. 이 이야기는 꼭 아이들만의 것이 아니라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즐거운 곳이자 빛나는 성찰의 공간이다. 반면 지구라는 행성에는 여전히 오징어들이 모여 산다. 주꾸미에서 진화한 오징어들은 그 끈질긴 연체의 다리를 밀어 지구촌 영상매체들을 휘어잡고 있다. 마침내 모지리들의 승리인가. 아마도 세상의 고민을 다 아는 어린왕자도 작금의 오징어만큼은 겪어보지 못했을 것이다. 문제는 이렇게 갑오징어로 떴어도 실제의 오징어들은 여전히 생활고에 주꾸미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어찌 오징어들이 어린왕자가 될 것인가.

최삼경(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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