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을 읽다 / 전국국어교사모임 / 휴머니스트 / 2020

산골 집은 대들보도 기둥도 문살도 자작나무다 / 밤이면 캥캥 여우가 우는 산도 자작나무다

그 맛있는 메밀국수를 삶는 장작도 자작나무다 / 그리고 감로같이 단 샘이 솟는 박우물도 자작나무다

산 너머는 평안도 땅도 보인다는 이 산골은 온통 자작나무다 (백석, 〈백화(白樺)〉)

아이들이 함께 읊조리는 시노래에 자작나무 가지 끝 우듬지가 흔들린다. 노란 잎들이 살랑대며 떨어지자 아이들은 환호를 지른다. 시월의 마지막 주, 인제군 원대리 자작나무숲을 찾아 교과융합 시낭송수업 체험활동을 펼쳤다. 방역 활동에 유의하며 학급별 분반 활동으로 함께 숲길을 걷고, 나무결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쪽동백나무 조각에 시구도 써넣어 가방에 매달고, 나만의 애송시와 우리반 학급시도 낭송했다. 노래와 춤으로 자작나무를 느끼고 첼로와 비올라, 바이올린, 플롯과 클라리넷, 트럼펫과 호른까지 어우러진 연주는 자작나무숲 전체가 울림통이 되어 아름다운 선율을 고스란히 느끼도록 했다. 유진규 마임이스트의 마임공연은 몸짓으로 표현하는 한 편의 시였다.

깊어가는 가을, 청소년들과 부모님들이 함께 백석 시인의 시를 만나면 좋겠다. 백석은 1930년대 등장하여 6~7년 동안 100여 편의 시를 남겼다. 그의 시에는 일제강점기라는 시대 현실에 대한 울분이나 정감이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당대 시인들에게서 보이는 모더니즘적 경향과도 거리가 있다. 백석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주변 사람들이나 소소하고 사소한 것들을 소재로 삼아 그것들이 지닌 가치와 아름다움을 가만가만 이야기한다. 감정을 억누르는 객관적 시선으로 정갈함을 더하고, 토속적인 평안도 사투리를 곁들여 시를 더 맛깔나게 한다. 해방 후 고향인 정주에 정착하면서 월북 작가로 취급되어 우리에게 잊혔으나, 1988년 월북 작가 해금 조치가 본격화되면서 재조명되어 지금은 교과서에도 그의 시가 실리고 있다. 

《백석을 읽다》 이 책은 백석의 삶과 작품 세계를 들여다보고, 백석 시에 담긴 가치와 매력을 알려주는 책이다. 시를 온전히 이해하려면 먼저 시인들의 삶과 시대 상황, 작품 세계 등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먼저 백석의 삶을 압축적으로 소개하고, ‘여인, 음식, 여행’을 중심으로 구체적인 작품들을 예로 들면서 시인의 작품 세계를 알기 쉽게 풀어 놓는다. 백석 시 가운데 21편을 골라 싣고, 우선 작품과 관련한 몇 개의 키워드를 바탕으로 핵심 내용을 알려주며 시의 맥락과 표현의 매력을 찾을 수 있도록 했다. 그런 다음 시에 대한 감상 글을 실어 전체적인 느낌과 의미를 알 수 있게 했다. 시 읽기에 쉽게 다가서지 못한 청소년들도 키워드와 감상 글을 읽고 시를 감상한다면 작품의 깊고 넓은 의미와 매력을 발견할 수 있다. 

백석 시집을 다시 읽으며 시인의 형용사에 마음이 머문다. ‘서럽다, 좋다, 가난하다, 쓸쓸하다, 무섭다, 외롭다, 슬프다….’ 일상의 흔한 감정어인 형용사가 값싼 감정에 물들지 않고 오히려 고귀하고 아름다운 것으로 변한다. 주어진 운명을 능동적으로 인식하며 드러내는 위대한 힘, 비장한 아름다움이다. 시인의 명사들- 염소, 오리 망아지, 흰밥, 국수, 가자미, 밤, 하늘, 나무, 바다… 등은 한결같이 순하고 소박하다. 나아가 운문과 산문이 교체하며 이야기와 생활 시에서 드러난 반복, 부연이 의미를 심화시킨다. 한 편씩 읽다 보면 백석의 시가 왜 높이 평가되는지, 어떤 가치와 매력이 있는지 새삼 알게 될 것이다.  

한명숙(봄내중 수석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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