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로 108배 하는 김은정

2019년 <두바퀴로 가는 세상>의 송년회에서 그녀를 처음 보았다. 그날 사회를 맡은 그녀는 보통의 모임에서 상상하는 그런 진행이 아니라 스스로가 푹 빠져서 가장 즐기는, 그야말로 미친듯한 열정의 진행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그날의 그녀를 떠올릴 때 열정에 우선해 떠오르는 또 다른 모습이 있는데 바로 위아래 빨간 츄리닝 패션이다. 최근 전세계를 휩쓴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의상을 그녀는 이미 몇 년 전에 선도했던 것이다. 본인을 김은정 이라고 소개하며 스스로를 ‘광’이라고 불러 달라고 했던 김은정 씨. 이후 어느 자리에서든지 김은정 혹은 광(狂)을 알아보는 것은 쉬웠다. 행동이 튀었고 발언이 튀었고 의상이 튀었으니까. 10년간 다닌 ‘한살림춘천소비자생활협동조합’을 그만둔 그녀가 얼마 전 ‘춘천시 자전거활성화 위원회’ 위원으로 위촉됐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두바퀴로가는세상 : 사회적협동조합’(이하 두바세)의 일로 백수 과로하듯 산다는 말은 이미 들었던 터다. 그녀의 주변에 있는 우리 모두는 그녀를 ‘狂’으로 알고 있는데 ‘狂’이 아니라 ‘光’임을 수정하는 것으로 인터뷰는 시작되었다.

 

“속초에서 나고 자랐구요. 2009년에 남편 직장의 근무지를 따라 춘천으로 이사왔어요. 벌써 12년이 되었네요. 그 사이 큰아이는 대학에 진학했고 작은 아이는 고3이 됐어요. 올해 4월에 10년간 조직활동가로 몸담은 한살림 생협을 그만두고 지금은 맘 편하게 살고 있습니다.”

춘천에서의 12년을 키워드로 대변한다면 한살림과 자전거라고 김은정(이하 ‘광’) 씨는 명쾌하게 대답했다. 한살림부터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2009년 당시는 원주한살림으로부터 물품을 받는 조합원이었죠. 그러다가 춘천의 조합원 모임을 만들고 활동을 하다 보니 춘천에도 한살림매장을 만들자는 의욕들이 생겼어요. 그때 원주한살림 춘천매장을 만들고, 춘천운영위원회를 만들고, 그렇게 발전을 해서 한살림춘천 생협이 된 거예요. 저는 그 변화 속에서 쭈욱 조직활동가로 지금까지 이어온 거고요.”

처음 한살림의 조합원이 된 이유가 궁금하네요. 아울러 10년의 긴 시간을 조직활동가로 보내셨는데 특별히 인상적인 깨달음이나 전환을 이루는 사건이 있다면 듣고 싶습니다.

“한살림은 친구가 조합원이였고, 친환경수세미 뜨는 것이 재미있었고, 나를 성장시키는 무언가가 있어서 좋았어요, 춘천에서 조직활동가 활동을 하면서 생산자, 실무자, 임원, 활동가로 구성된 ‘광데렐라’ 라는 모임을 만들었는데, 광데렐라의 해외연수 신청이 받아들여져 전환마을인 영국의 토트네스를 다녀오게 됐어요. 토트네스에서의 연수 첫날 가이드 설명을 들을 때가 마침 시청 주차장이었어요. “여기가 보시다시피 주차장인데 예전엔 토마토밭이었다. 주차장을 토마토밭으로 다시 바꾸는 게 전환이다.”라고 말씀하시는데 아, 뭔가 새로움을 추구하는 것 만이 아닌 옛것으로 돌아가 다시 지속가능한 삶을 꿈꾸는 거. 그때 필이 오는 느낌을 받았어요.”

광의 토트네스의 경험을 춘천의 시민들과 공유하는 자리는 자연스럽게 자전거로 이어진다. 다소 상투적일지라도 광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란 말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활동가로서 생명운동을 실천하며 사는 방법 한가지는 자전거를 타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예전부터 자전거는 타고 싶었지만 겁나서 배울 엄두를 못 내고 살았죠. 그러다 기회가 왔어요. 토트네스의 경험을 시민들과 공유하는 자리에 ‘두바퀴로가는세상’을 이끌고 있는 어형종님이 자전거를 타고 온 거예요. 그분께 현재 두바세 사협의 이사장이신 김경숙님과 함께 자전거를 배웠어요. 그날이 2018년 2월 10일, 내 생에 역사적인 날이 됐죠. 그리고 그해 10월 1일, 자전거출근에 첫 도전을 했어요. 후평동 포스코에서 남춘천중까지. 무섭고, 떨리고, 손에 땀이 나고 그야말로 치열했는데 도착했을 땐 난리가 났어요. 소리 지르고 매장팀장님 불러서 사진 찍어 달라고 해서 가족들에게 보내고 여기저기서 축하받고. 지금은 20분 만에 갈 거리를 그땐 50분 걸렸는데 운전면허 따고 첫 운전은 기억 못 해도 자전거 첫 출근은 잊을 수가 없어요.”

조직활동가답게 광은 개인의 경험을 사회적으로 확장시킨다.

“자전거를 타고 싶으나 저처럼 두려워서 감히 배울 생각을 못 하는 분들을 위해서 한살림 내에 ‘지구인자전거학교’를 만들었어요. 학생을 모집하고 두바세의 멤버들을 한살림 조합원으로 가입시켜서 자전거 선생님으로 모셨지요. 매년 20명 정도로 시작해서 마지막은 다 함께 두물머리 라이딩을 하는 것으로 교육을 수료해요. 요즘은 사협 두바세에서 자전거 출근길 가이드를 하죠. 이른바 ‘자탄춘풍:자전거를 탄 춘천풍경’인데 함께 출근길 동행을 하고 출근도로도 설계해 줘요. 골목길을 포함해서 더 안전한 출근길 루트를 제시하는 거예요. 우리가 추구하는 생활자전거타기가 자연스럽게 실천되죠.”

소양댐 108번 라이딩도 궁금합니다. 저도 새벽라이딩을 하다가 우연찮게 두 번을 합류했어요. 소양댐 정상에 108번 올랐다는 얘기죠?

“한살림을 그만두고 마음의 여유가 생기니까 자전거를 오래 탈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어요. 첨엔 살도 좀 빼야겠단 생각으로 새벽에 나와 소양댐 정상까지 라이딩을 시작했는데 한 번, 두 번 하던 게 비가 오든 바람이 불든 새벽 4시 반이면 어김없이 집에서 나와 댐에 올랐어요. (하루도 안 빠지고요?) 다른 지역에 가는 하루, 이틀을 빼곤 무조건 갔어요. 그게 가능했던 게 제가 하루하루 라이딩 횟수를 두바세 단톡방에 올리니까 다른 회원들이 릴레이식으로 동행해주고... 또 그렇게 하다 보니까 고3 딸 생각도 나고... 남들은 108배도 하는데 그럼 나는 108번 오르자. 그 정도 정성은 고3 엄마니까 해보자 했죠. 65회 넘어서는 한 번에 두 번 세 번도 왕복하게 되더라고요.”

자전거를 타고 보는 춘천풍경에 대해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그리고 최근에 ‘춘천시 자전거활성화위원회’ 위원으로 위촉되셨는데 어떤 변화를 기대할 수 있을지 들으며 마칠까 합니다.

“제가 다니던 한살림이 온의동에 있었는데, 지금의 온의동은 예전과 너무 많이 달라졌어요. 커다란 산이 없어지고 아파트와 상가들이 생겨났죠. 그 과정들을 저는 몇 년 동안 자전거를 타고 가며 지켜보았어요. 산이 사라진 자리에 길이 생기고, 아파트가 들어서고, 상가들이 생기고, 길은 포장했다가 다시 파헤치고, 다시 길 가운데에 나무를 심고. 그런데요, 그 넓은 큰길에 자전거도로는 없어요. 기존 도로를 걷어내 자전거도로를 만드는 게 세계적 추세인데 최근 도로인데도... 무섭다는 생각이 어느 날 문득 들더라고요. 한살림에서 생명운동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는데, 이렇게 밖으로 나와 시민들과 생활자전거타기 운동을 함께 하면서 춘천이 자전거타기 안전한 도시가 되면 정말 좋겠단 생각이 간절해요. 그렇게 되도록 우리 두바세 사협과 두바세모임 분들하고 즐겁게 마음 나누며 활동하는 것이 현재의 광(光) 바람입니다.” 

光과 狂 사이에서 일정한 인터뷰 톤을 유지하는 것은 어려웠다. 김은정 씨의 언어를 활어처럼 그대로 갖다 놓는 게 김은정 씨나 독자를 위해서도 바른 일은 아니라는 판단이다. 매달 둘째 토요일 시청광장의 ‘월간춘천시민자전거 대행진’에 시민 참여를 당부하며 자탄풍경 속으로 그녀는 멀어져갔다.

조창호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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