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 가난


김재진


지붕 위에도 담 위에도
널어놓고 거둬들이지 않은
멍석 위의 빨간 고추 위로도
달빛이 쏟아져 흥건하지만
아무도 길 위에
나와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아부지,
달님은 왜 산꼭대기에 올라가 있나요?’
‘잠이 안 와서 그런 거지’.
‘잠도 안 자고 그럼 우린 어디로 가요?’
‘묻지 말고 그냥 발길 따라만 가면 된다’
공동묘지를 지나면서도 무섭지 않았던 건
아버지의 눌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부지 그림자가 내 그림자 보다 더 커요’
‘근심이 크면 그림자도 큰 법이지’.
그날 밤
아버지가 지고 오던 궁핍과 달리
마을을 빠져나오며 나는
조금도 가난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 저 가출하겠습니다.”

고1, 나의 마음은 푸른 갈망으로 끓고 있었습니다. 그해 여름부터 시작된 열병은 그 압력을 감당할 수가 없을 만큼 커지더니 여름과 가을 사이, 플라타나스 낙엽들이 바람에 이리저리 아스팔트 위를 몰려다닐 즈음 폭발하고 말았습니다. 나는 아버지가 집에 들어오시기만을 기다리며 침을 삼키고 있었는데, 정작 당신은 구두를 벗으며 대수롭지 않게 응수하고 있었습니다.

“그래? 알았다! 장남이 하고 싶다는데 뭐.”

좀 길어질 것으로 예상했던 이야기가 너무 간단하게 끝나자 나는 가방을 대충 챙긴 후 어색한 인사를 드렸습니다. 잔뜩 상기된 얼굴로 막 문을 열고 나가려는 순간 뒤쪽에서 여전히 일상적인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아들아, 언제 볼지 모르니 한 가지만 부탁하자.”

“예~. 뭐죠?”

“네가 어디에서 뭘 하면서 지낼지 모르겠지만, 하루를 끝내고 잠자리에 들 때는 언제나 그날 하루를 반성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그것뿐이다.”
순간, 나는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고 말았습니다. 두 달 넘도록 나를 괴롭혔던 가출의 열병은 마치 미로를 헤매다 출구를 찾은 새처럼 뒤를 돌아보지도 않은 채 내 마음을 벗어났으며, 그 순간 자유로움이 내 가슴 속에서 솟구치더니 몸 구석구석으로 뜨거움을 나르기 시작했습니다.

9년 전, 아버지는 가족에게 가르쳐준 몇 개의 교훈과 끝내 화해하지 못한 세상에 얼마간의 아쉬움을 남기고 먼 길을 떠나셨습니다. 이 세상에서 결코 단 한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사랑과 평화를 부디 푸른 하늘에서는 누리소서. 바람속 푸른 자유를 마음껏 누리소서.

이충호(영어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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