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성 (전 정의당 강원도당 부위원장)

춘천에 산 지 2년 반이 지났다. 예전에는 춘천하면 닭갈비와 막국수를 떠올리는게 전부였는데 지금은 아니다. 후평사거리도 보이고 봉의산도 보인다. 관광지였던 춘천이 생활터전이 되면서 춘천이 전과는 다르게 보이는 중이다. 

춘천에 와서 일하며 만난 여러 인연이 생각난다. 맨 처음 했던 택배물류 하차일, 그곳에서 함께 물건을 날랐던 20대 청년 둘이 기억난다. 두 청년은 오래전부터 친구 사이였는데 내가 이 둘 사이에 끼어 3인 1조로 호흡을 맞추었다. 오전내내 함께 짐을 나르며 땀을 흘렸다. 바삐 돌아가는 현장이라 대화다운 대화를 제대로 나누지는 못했지만 물건 나르는 호흡이 척척 잘 맞아 말없이도 가까워졌다. 내가 이들보다 더 늦게 들어왔고 더 일찍 그만두었다. 마지막 일이 끝날 때쯤 이대로 헤어지기 아쉬워 밥 약속을 잡았다. 둘은 꾸준히 할 일자리를 구하는 중이었다. 일자리를 구하는 동안 필요한 생활비 마련을 위해 물류센터에서 알바를 했는데 일이 잘 구해지지 않으면서 잠시만 해야겠다고 생각했던 물류하차일이 길어지고 있었다. 식사자리에서 다른지역 원정알바 자리가 하나 나왔는데 몇 달만 숙박하며 일하면 약간의 목돈을 마련할 수 있다며 갈지 말지 고민했던 둘의 대화가 기억난다. 

유난히 추웠던 올해 초, 인테리어회사 사장님을 따라다니며 알바를 한 적이 있다. 3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젊은 사장님은 20대 때부터 마루 까는 일을 했다. 몇 년 하다가 무릎이 망가져서 마루 일을 그만두고는 배선, 수도, 목공, 도배 등 마루하며 곁눈질로 배운 기술을 바탕으로 인테리어회사를 차렸다. 사장님이지만 직원없이 혼자 1톤트럭을 몰고 다니며 인테리어 공사를 했던 사장님은 혼자 하기 어려울 때마다 알바를 썼다. 나는 사장님을 따라다니며 잡무를 했다. 사장님은 참 힘든 매일을 소화하고 있었다. 일당벌이 알바인 나는 저녁 식사 전에 돌려보내고, 사장님은 혼자 일터에 남았다. 기술이 좋아 일은 계속 들어왔지만, 재료사고 이것저것 빼면 사무실 월세 내기도 빠듯했던 사장님의 씁쓸한 표정이 떠오른다.

며칠 전 새 알바를 구했다. 새벽시장 나가는 사장님을 도와 매일 천막가게를 차리고 다시 걷어들이는 일이다. 일이 조금 힘들긴 하지만 춘천의 아침을 여는 이들 사이에 내가 있다는 것, 그리고 이 속에서 일한만큼 돈을 쥐고 가 생활비에 보탬을 한다는 것이 보람있다. 시장 상인 대부분 연세가 있으시지만, 이분들과 함께 아침을 여는 청년들도 보인다. 새벽시장 사람들과의 만남이 기대된다.

춘천에 산다고 하면 다른 지역에 사는 친구들이 부러워한다. 많지도 적지도 않은 인구에 자연경관도 뛰어나고, 인프라도 나름대로 잘 갖춰져 있지 않냐면서 말이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관광객이 아니라 주민이 되고 나니 춘천이 가진 문제들도 함께 보여 마냥 춘천살이를 자랑하기가 쉽지만은 않다. 춘천도 부족한 일자리, 난개발, 집값 폭등에 몸살을 앓고있다. 

춘천의 아름다움은 내가 만난 청년들, 우리가 만난 사람들로부터 나온다. 여러 문제가 있음에도 춘천이 살기좋은 도시로 불리는 이유는 어려운 환경에서도 정직하게 땀흘리며 성실하게 삶을 꾸려가는 사람들이 있어서다. 이들이 내는 향기가 춘천을 아름답게 한다. 좋은 일을 구할 수 있는 춘천,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춘천, 좋은 환경을 보존하여 매일같이 상쾌한 새벽공기를 마실 수 있는 춘천이 되기를 소망한다. 아름다운 춘천사람들이 이곳에서 계속 향기 낼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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