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올해 옅은 첫눈이 내렸다. 급격히 추워진 날씨에 서둘러 출근하는 사람들과 차들 사이로 폐지 줍는 노인을 보았다. 평소에도 폐지 줍는 노인들을 종종 마주친다. 하루 생계를 위해 이른 새벽부터 거리로 나와 폐지를 줍는 그들은 본인 눈높이를 넘을 만큼의 폐지를 리어카에 싣고 위험한 차도를 힘겹게 지난다.

오전 10시, 기자 둘이서 춘천의 ‘광명 고물상’을 찾았다. 폐지를 주워오는 어르신을 만나 돕고 싶어 무작정 기다릴 생각이었다. 고물상에 도착한 지 얼마 안 돼서 한 어르신이 말을 걸어왔다. 폐지를 주우러 다닌 지 10여 년이 넘었다는 박성여(73) 할머니였다. 

폐지 줍는 노인이 리어카를 끌고 위험한 차도를 지나고 있다.

“시간 맞춰 빨리 가야해… 다른 사람이 주워가기 전에”

박 씨는 이제 막 오전 일을 나가려던 참이었다. 평소 폐지를 주우러 자주 가는 학교가 있는데, 요즘 들어 누가 본인보다 먼저 폐지를 가지고 가서 빨리 학교에 가야했다. 《춘천사람들》 사무실에도 모아놓은 폐지를 드리기 위해 기자는 리어카를 끌고 사무실로 향했다.

리어카는 생각처럼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기 어려웠다. 리어카를 처음 끌어봐서 허둥대는 기자에게 박 씨는 “잘못하면 차를 긁거나 부딪칠 수 있어서 늘 조심해. 내 리어카는 브레이크가 없어서 잡아두지 않으면 굴러가. 리어카 무게가 40kg 정도라 꽤 무거워. 폐지는 하루에 50~100kg 정도 줍는데, 눈에 보이면 있는 대로 다 싣고 와”라고 말했다. 

사무실에 도착해 폐지를 싣고 박 씨가 자주 간다는 학교로 향했다. 길거리나 골목에선 기자에게 리어카를 맡겼지만, 차도에선 초보자는 위험하다며 완강하게 본인이 직접 리어카를 끌었다. 골목들을 지나면서 박 씨는 폐지를 꾸준히 발견했다. 기자 둘의 눈에는 띄지도 않았던 폐지 박스들이 박 씨의 레이더에는 완벽하게 걸린 것이다. 폐지를 정리하는 솜씨 또한 매우 빠르고 정갈했다. 역시 경험자를 따라갈 수 없었다.

초겨울 날씨에도 불구하고 리어카를 끌다보니 곧 땀이 흘렀다. 입고 있던 겉옷을 허리춤에 당겨 묶고 다시 움직였다. 박 씨는 “예전에는 골목골목 많이 다녔지만, 다리도 아프고 무릎도 아파서 요즘은 자주 못 다녀. 주로 오전에 폐지를 줍고 비나 눈이 올 때는 쉬지. 그런 날은 아예 나가지 않아. 박스가 젖으면 고물상에서 가격을 적게 쳐주거나 아예 안 받아”라고 했다.

10년간 폐지만 주워 온 박 씨는 노인 정책이나 지원에 관련해서는 “지원받는 것이 없고 지원과 관련해서 잘 몰라”라고 했다. 

어느 덧 2~3시간이 지났다. 박 씨와 기자들은 오전에 모은 폐지를 고물상에 가지고 갔다. 오전에 흘린 땀의 댓가는 1만 원이었다. 박 씨는 “오전에 일한 것 치곤 많이 받은 편이야”라며 미소지었다. 오랜 인연으로 가족처럼 지내는 고물상 사장은 박 씨와 기자들에게 따뜻한 커피를 건네며 세상사는 이야기를 나눴다.

‘광명 고물상’의 대표 이동진(53) 씨는 “어르신들은 매일 다양한 시간대에 방문하신다. 하루에 5~6분 정도 오시는 것 같다. 연세 많으신 분들은 90세도 계신다. 100세 할머니도 계셨는데 얼마 전에 돌아가셨다. 많이 가져오시는 분들은 하루에 2~3만 원 정도를 버시고, 조금씩 가져오시는 분들은 5~6천 원 정도를 버신다. 2~3만 원을 벌려면 200kg 정도를 가져와야한다. 그래서 어르신들 평균 수입은 천차만별로 다르다”고 했다. 

기자들은 오후에 다시 고물상을 찾았다. 잠시 후, 폐지로 가득한 손수레를 끌고 온 두 번째 어르신을 만났다.

기자가 직접 리어카를 끌어보니 폐지만큼 무거운 삶의 무게를 조금이나마 느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꿋꿋이 폐지 줍기”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어르신(82)은 “폐지 줍는 일을 시작한 지는 5~6년 정도 됐어. 아들이 하늘나라로 가고 나서 한동안 일을 쉬다가 요즘 다시 시작했지. 시간을 내 맘대로 정해서 일을 할 수 있으니 편하긴 해. 아프면 쉬지”라고 말했다.

기초생활수급비를 받는 어르신은 별도의 노인복지정책은 모른다고 했다. 어르신은 손수레에 폐지 45kg를 가져와서 5천 원을 받았다. 고물상 주인이 가격을 후하게 쳐줬다.

어르신은 “2개월 전에 이사를 했는데, 바퀴벌레가 많아서 힘들어.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건 꿋꿋이 폐지를 줍는 거야. 먹고 살려면 힘내서 해야지”라고 말했다. 

어르신에게 오후에 일을 더 나가실 예정이면 기자도 따라나서겠다고 했다. 하지만 어르신은 괜히 고생하지 말라며 홀연히 고물상을 떠났다. 이 어르신은 몇 시간이 지나 약간의 고물들을 가져와 3천 원을 받았다.

오후 4시가 지나자 기온이 뚝 떨어졌다. 고물상 대표 이동진 씨와 아내 원현숙 씨는 어르신들의 성함을 언급하며 왜 이 시간까지 오지 않는지 걱정했다. “어떤 어르신은 어제 허리가 많이 아프시다던데. 오늘 그래서 안 오시나?”라며 대화를 나눴다. 주인들이 이러한 걱정을 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평소 오시던 어르신들 중에 점점 돌아가시는 어르신이 많기 때문이다. 오늘은 폐지를 더 가져오실 어르신이 없는 것 같다며 이야기하던 중 세 번째 어르신을 만났다.

“신세 지지 않고 열심히 살고파”

다리가 불편해 느린 걸음으로 고물상에 들어온 전정숙(85) 할머니는 상자 세 박스에 소주병을 가득 담아 왔다. 어르신은 요새 술병을 많이 내놓는 사람들이 없어서 병 세 박스를 모으는 데 3주가 걸렸다고 했다. 

전 씨는 “남편이 빚을 남겨둬서 무척 힘들었어. 지금까지도 빚을 갚고 있어. 요즘은 나이 먹으니까 온몸이 다 아프네. 뇌수술도 해서 약을 한 움큼씩 먹어. 차상위계층이라서 나라에서 도움을 주긴 해. 노인일자리라고 해서 담배꽁초를 줍고 풀도 뽑고 그래. 한 달에 열흘 정도 하고, 주말에는 쉬지. 내가 몸은 약해도 책임감이 있어서 한 번 하면 깨끗하게 해놓으려고 열심히 해. 노인일자리로 한 달에 27만 원을 받는데 생활하기엔 턱없이 부족해”라고 말했다.

이어서 “집세가 저렴한 곳에 사는데, 스님이 종종 쌀을 가져다주고 연탄은행에서도 연탄이랑 무료급식도 받아. 평일 낮에 급식을 받으면 저녁까지 먹어”라며 “사는 게 별거 있나. 사는 동안 신세 지지 않고 잘 살아야지. 열심히 살아야지”라고 말했다.

전 씨는 소주병 세 박스 가량을 모아 와 약 4천 원을 벌었다. 고물상 부부는 또 넉넉하게 값을 쳐주었다. 전 씨는 “왜 이렇게 많이 줘?”라며 모처럼 환하게 웃으며 고물상을 떠났다.

전은정·장수진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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