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첫 주말, 단풍이 짙게 물든 가을 중도를 방문했다. 정확하게는 중도의 끝자락 하중도 생태공원이다.

중도는 레고랜드 막바지 공사로 어수선했다. 가을바람이 공사장 흙먼지를 날려버리자 울창한 숲과 갈대밭이 눈앞에 펼쳐졌다. 하중도 생태공원은 자연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보전녹지지역’으로서 아름다운 수변공간과 원시림을 즐길 수 있는 춘천의 숨은 명소이다. 이곳에서 지난 5~7일에 공연예술축제 <예술섬 중도, ‘다시, 숲’>이 펼쳐졌다. 

축제는 춘천문화재단이 문화도시 조성사업 중 하나로 마련했다. 숲속에서 펼쳐진 공연 ‘다시, 숲’, 자연에서 함께 노는 ‘숲놀이’, 새롭게 만나는 풍경 ‘중도산책’으로 나뉜 다양한 프로그램이 ‘섬’·‘숲’·‘생태’를 키워드로 펼쳐졌다.

특히 음악·무용·연극적 요소가 골고루 담긴 주제공연 <다시, 숲 : 폐허의 꽃>은 자연과 인간의 공존, 환경파괴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웠다. 카누·자전거·셔틀버스 등을 타고 도착한 관객들은 숲길을 걸으며 피아노·콘트라베이스·발레·현대무용·부토(가부키와 노, 현대무용이 만나 탄생한 아방가르드 무용)·아쟁 등 연주와 한바탕 몸짓을 감상했다. 예술가들은 자연을 찬양하고 상처받은 중도를 위로했다. 공연은 숲길의 끝, 레고랜드 공사현장이 한눈에 펼쳐진 막다른 곳에서 절정을 향했다. 거대한 포크레인의 굉음과 파헤쳐진 중도의 속살, 멀리 보이는 도심의 고층아파트 등 디스토피아적 풍경 앞에 선 예술가들이 처절한 몸짓과 절규로 인간의 파괴적 행태를 꾸짖었다. 예술가들은 폐허의 섬에서 다시 생명의 길로 시민을 이끌었다. 그곳에서 소생한 자연의 신을 가슴에 품고, 열정적인 플라맹코의 두드림으로 잠든 대지를 깨우며 주제공연을 마무리했다. 시민들은 숙연함과 환호를 오갔다.

‘숲놀이’도 인상적이었다. 시민들은 숲해설가와 숲길을 걸으며 하중도의 생태를 이해하고, 아이들은 도토리를 줍고 나뭇잎으로 게임을 하는 등 자연을 맘껏 즐겼다. 이고은(35) 씨는 “춘천에 살면서도 처음 왔다. 도심에 살아서 숲놀이가 처음인 아이가 정말 좋아한다. 이곳은 잘 보존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축제에 오기 전 “중도에 그런 곳이 있어? 모두 파헤치지 않았어? 왜 거기서 축제를 열어?”라는 말을 들었다. 중도는 춘천사람들에게 소풍·MT·가족나들이·데이트 등 추억이 담긴 휴식과 마음의 피난처였다. 그리고 아주 오래전에는 선사인들의 삶의 터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억의 섬은 사라지고 아시아 최대 규모의 레고랜드가 들어선다. 얼마나 더 특별한 이유를 대야 소중한 것을 지킬 수 있었을까? 기자도 답하기 어려워 무력감을 느낀다.

이제 곧 거대한 놀이시설과 하중도 자연이 각각 춘천사람들에게 새로운 중도의 추억을 다시 심어주리라. 무엇이 더 좋은 추억이 될지 아이가 자라면 알게 되리라. 이곳에서 예술축제를 여는 이유? 그저 아름다운 곳이 아니라 추억과 역사가 깃들어 있고, 사라지질 않을 추억과 역사를 다시 만들기 위한 작은 디딤돌이 필요하기 때문 아닐까?

변유정 예술감독은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무대로, 예술가들의 몸짓을 통해 섬 끝자락에 남아 있는 하중도 생태공원이 더 많은 이들에게 알려져 이곳만은 꼭 지켜지길 바라는 마음이다.” 춘천문화재단은 “춘천이 5년간 문화자원과 인프라를 활용해 그려갈 축제특화 사업의 새로운 상(像)을 보여주는 시작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들의 바람이 시민과 함께 이루어지려면 더욱 각별한 정성이 필요하다. “커다란 버드나무 앞에 서니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감동을 느꼈다”는 한 시민의 말처럼, 하중도의 나무·숲 등 자연 하나하나를 꼭 집어서 축제의 또렷한 주인공으로 삼는 건 어떨까? 다른 축제와 더 차별화되도록 백화점식 공연축제보다는 하나의 장르로 압축하거나, 선사시대 등 인간의 원형적 삶이 반영된 프로그램 등도 고려해 볼 만 하다.

자전거를 타고 돌아오는 길, 가을의 하중도가 예술로 짙게 물들고 있었다. 

박종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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