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우버(Uber)’가 있다면 동남아시아에는 ‘그랩(Grab)’이라는 앱(App)이 있습니다. 그랩은 전 세계 차량공유 서비스 1위 기업인 우버를 몰아내고 동남아 8개국 400여 개 이상의 도시에서 차량공유를 비롯한 음식배달, 택배, 디지털 결제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종합 플랫폼으로 성장했습니다.

필자도 2020년 2월 인도네시아에 출장을 갔을 때 아주 유용하게 사용하기도 했던 플랫폼입니다. 우리나라 배달의 민족과 카카오택시를 합친 듯한 이 플랫폼은 동남아 방문 시 아주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었던 앱입니다. 특히, 현지 숙소에서 음식을 편하게 시켜 먹을 수도 있고, 오토바이 택시를 숙소 바로 앞까지 불러 이동할 수 있어 동남아 출장 시에는 필수로 사용했던 앱이기도 했습니다.

그랩은 2012년 말레이시아에서 2만5천달러의 초기 자본금으로 시작한 아주 작은 스타트업 이였는데, 현재는 기업가치 396억 달러(약 45조 원)의 ‘데카콘’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랩의 창업은 말레이시아 사람이었던 앤서니 탄과 동기인 후이링 탄이 미국 하버드 대학원에 재학 중이던 시절 창업한 스타트업입니다. 당시 말레이시아는 도로시설이 열악해 교통 혼잡 문제가 심각했고, 대중교통 인프라가 잘 갖춰지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또한 택시를 잡기도 힘들고, 택시기사들의 바가지요금도 심했습니다. 앤서니와 후이링은 이런 교통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2012년 콜택시 앱인 ‘마이택시’를 개발해 사업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택시기사들을 설득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국내에서도 카카오택시 출시 당시 골목상권 위협이라는 문제에 직면하여 수많은 택시 콜센터와 택시기사들의 파업 등 많은 사회적 이슈도 뒤따랐었습니다. 반면에 당시 말레이시아에선 콜택시라는 개념 자체가 생소했고 택시기사들은 디지털 기기나 앱 사용을 낯설어했습니다. 스마트폰을 가진 사람조차 많지 않았던 시절이기에, 처음 마이택시에 가입한 택시기사 수는 겨우 40명 남짓이었습니다.

창업자들은 택시기사들의 가입을 유도하기 위해 직접 현장에 뛰어들었습니다. 택시 회사를 일일이 찾아다니며 ‘앱을 이용하면 승객을 찾기 위한 시간을 낭비하지 않아도 되고, 수입도 늘어날 것’이라고 기사들을 설득했습니다. 또 스마트폰 제조사·통신사 직원들을 만나 택시기사들에게 스마트폰 구매 비용을 보조해 주도록 협의했다고 합니다. 

앱의 편리함과 수익성을 경험한 택시기사들 사이에서 ‘마이택시’는 점점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습니다. 2013년 ‘그랩 택시’로 이름을 바꾸고 필리핀·태국·싱가포르·베트남·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8개 국가로 서비스를 확장했습니다. 말레이시아와 비슷한 교통 문제를 겪고 있던 주변국에서도 그랩은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그랩은 창업 2년 만에 가입자 수가 3만 명까지 증가했고, 4년 뒤인 2016년엔 20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2021년 현재 그랩은 매일 4천500만 명 이상이 사용하고 가입자가 1억 명을 넘어선 거대 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세계 최대 차량공유 기업인 미국의 우버는 2013년 동남아 시장에 진출했고, 같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그랩과 우버의 경쟁은 불가피했습니다. 막강한 자본, 다양한 시장에서의 경험을 가진 우버는 이제 막 사업에 첫발을 내디딘 그랩에겐 위협적인 기업이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그랩의 승리였습니다. 그랩은 5년간의 경쟁 끝에 2018년 우버의 동남아 사업을 인수했습니다. 그랩의 승리 비결은 동남아 교통 특성에 맞는 현지화 전략을 구사한 것이었습니다. 신용카드 보급률이 낮은 현지 특성에 맞게 현금 결제를 가능하게 하고, 국가별 상황에 맞는 ‘맞춤 서비스’를 제공했습니다. 특히, 오토바이 이용이 많던 동남아시아의 특색에 맞게 오토바이 택시기사들에게 그랩의 조끼와 헬멧을 제공한 직접 홍보도 현지화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랩은 현재 음식배달 서비스 ‘그랩 푸드’, 물류 배달 서비스 ‘그랩 익스프레스’, 모바일 결제 시스템 ‘그랩 페이’ 등 다양한 분야로 사업을 넓히며 ‘만능 플랫폼’으로 진화하는 중입니다. 앤서니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그랩을 모빌리티 서비스를 넘어선 라이프스타일 플랫폼으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힌 바 있습니다. 디지털 혁신을 통해 동남아 시민들에게 편리한 삶을 제공하고, 더 높은 사회적 가치 창출을 이뤄내는 것이 그랩이라는 기업의 존재 이유라는 것입니다. 

차량공유 서비스에 이어 모바일 결제 시장까지 장악하면서 앞으로 그랩의 성장은 무궁무진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그랩은 사업성과 성장 가능성을 인정받아 네이버, 현대자동차그룹, SK그룹, 도요타, 마이크로소프트 등 수많은 기업으로부터 수천억 원에 이르는 투자를 받았습니다. 지난 2019년 기준 그랩의 글로벌 투자 누적액은 10조2천억 원에 달한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랩은 현금 사용이 강한 동남아에서 모바일 결제가 보편화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더 많은 사람이 그랩이 제공하는 유용한 서비스를 편리하게 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죠. 수많은 차량공유 서비스 플랫폼 중에서도 그랩이 급성장한 이유는 기존에 없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 소비자의 삶을 혁신이라 불릴 만큼 변화시켰다는 데 있습니다. 

김철태(브이플렉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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