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큰롤 50년 역사를 빛낸 50인의 거목들

리틀 리차드(Little Richard)

초기 로큰롤 영웅 가운데 광포(狂暴)함으로 치면 단연 리틀 리차드였다. 독특한 헤어스타일과 의상은 말할 것도 없고, 무대에서 발을 피아노 위에 올리고 고래고래 목청을 높이는 파격을 일삼았다. 의미 없는 의성어를 노랫말에 심은 것도 그만의 방식이었다. ’51년 콘테스트에서 입상하면서 RCA 빅터에서 첫 음반을 취입했다.  ’56년 <Tutti-Frutti>로 자신의 시대를 열었지만 영광은 이 곡을 리메이크한 백인가수 팻 분에게 돌아갔다. 그는 “오늘날의 로큰롤이 단지 흑인 리듬 앤 블루스에서 이름만 바뀐 것 뿐”이며 “백인들이 흑인의 로큰롤을 강탈하고 그 숨결을 팔아 먹었다”는 주장을 서슴지 않았다. ’50년대 중반 R&B에서 로큰롤의 이동을 웅변해주는 역사적인 인물이다. ’59년 돌연 로큰롤과 인연을 끊고 가스펠로 전향했다. 대표작은 비틀스도 부른 <Long Tall Sally>와 <Rip It Up>, <Good Golly, Miss Molly> 등이 있다.

비 비 킹(B. B. King)

명실상부한 블루스기타의 황제이자, 블루스와 로큰롤 역사의 산증인. 

U2와 에릭 클랩튼 등 후배 유명 연주자들과 공연을 자주 가진 탓에 머디 워터스, 하울링 울프, 엘모어 제임스 등 동시대 블루스맨 중에서도 대중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인물이기도 하다. 기타줄을 들어 올리는 벤딩 주법과 탁월한 가창은 흑인 블루스의 한과 고통을 그대로 전달한다. 미시시피 아이타 베나에서 1925년에 라일리 비 킹을 본명으로 태어났고, 선배 흑인기타리스트 티 본 워커의 영향을 받은 그는 자신의 기타를 ‘루씰’로 명명한 ’49년에 첫 레코드를 취입했다. 이듬해 RPM 음반사와 계약을 체결한 뒤 ’52년 <Three O’clock Blues>, ’54년 <You Upset Me, Baby>를 히트시켰다. ’51년 이래 약 40년간 R&B 히트 차트에 올린 곡만도 무려 70여곡이 넘는다. ’69년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The Thrill Is Gone>은 그의 대표작으로 남아있다. ’87년 그래미 평생공로상을 받았고, 역시 같은 해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입적되었다.

에벌리 브라더스(Everly Brothers)

컨트리음악 성향의 로커빌리(Rockabilly) 시대를 화려하게 수놓은 황금 형제듀엣. 

두 살 터울의 돈 에벌리와 필 에벌리 형제는 가수였던 부모와 함께 어릴 적부터 노래했고 컨트리의 본고장 내시빌에서 기타의 대가 쳇 앳킨스에 초청되어 ’55년 첫 레코딩을 했다. 2년 뒤 소규모 음반사 케이던스(Cadence)와 계약하면서 전성기를 맞이했다. <Bye Bye Love>, <All I Have To Is Dream>, <Cathy’s Crown> 등 빅 히트송이 줄을 이었다.

낭만적인 멜로디를 전하는 두 형제의 하모니는 60년대의 사이먼 앤 가펑클 등 많은 듀엣 팀에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한 뱃속에서 태어난 형제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사이가 나빠 ’73년에 해산했고 10년이 흐른 ’83년 재결합했다. 한국에서도 인기가 높아 <Let It Be Me>, <Crying In The Rain> 등이 널리 애청되었다.

DJ 최인(한국방송디스크자키협회 정회원)

 

저작권자 © 《춘천사람들》 - 춘천시민의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