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홍석 (사단법인 인투컬쳐 상임대표)

나는 골목길을 좋아한다. 특히 도시 속의 골목을 내 방식대로 이해하고 걷는 것을 좋아한다. 도로는 차와 사람들이 빠르게 지나가게 만든 인위적인 길이다. 그렇지만 골목길은 동네 안에 사는 수많은 삶을 이리저리 연결해 놓은 좁은 통로이다. 도시는 시대에 따라 진화를 거듭해왔지만, 골목은 도시화의 그늘이 만들어낸 인간의 삶의 매력이 여전히 남아있다. 획일적이고 고립된 아파트 생활양식으로 인해 이웃에 대한 무관심, 개인주의, 그리고 이로 인한 소외감이 높아져 가는 것이 오늘날 우리들의 자화상이기에 골목 안의 정취가 더 그립고 소중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바람과 달리 진정으로 인간을 위한 도시나 골목은 많지 않다. 

춘천은 최근 몇 년 사이에 재개발과 재건축이 진행되면서 빠르게 도시화의 길을 걷고 있다. 대규모 아파트 공급은 주민의 주거문제를 해소하고 도시 인프라를 확충하는데 긍정적 기여를 하고 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건설업자와 토지소유자들이 커다란 개발이익을 얻도록 했고, 주민들 가운데 일부는 아파트가 주거공간이 아니라 자본축적의 개념으로 인식하도록 만듦으로써 불평등과 양극화가 오히려 심화되는 도시문제를 낳고 있다. 더구나 아파트 단지들이 고층화되고 인문적·자연적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자산 이득의 전유 공간으로 변모해 가면서, 더 이상 춘천이 품위 있는 문화의 도시라는 생각을 가질 수 없도록 했다. 

문화는 주민들이 오랜 세월 살아오면서 형성된 유무형의 의미가 축적된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의 일상과 삶의 총체가 담겨져 있다. 그렇기에 단기간 내에 만들어지는 창조적 행위나 인위적 퍼포먼스와는 다르다. 도시는 발전하기도 하고 때로는 쇠락하기도 하지만 문화는 그 도시를 부활시키기는 진정한 힘을 지니고 있다. 2010년 들어 달동네가 급속한 도시화 과정에서 점차 잃어가는 우리의 모습을 재발견하는 공간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에게해의 산토리니, 부산의 초량 이바구 길, 감천문화마을의 달동네를 보기 위해 수많은 여행자들이 모여들고 있다. 달동네는 아파트 단지처럼 도시설계자나 건축가에 의해 만들어지기보다 주민 스스로가 세워나간 자생적 산물이다. 그래서 이웃 간에 많은 것을 공유하고 나누면서 함께 살아간다.

춘천 약사동 원도심에도 달동네인 망대골목마을이 있다. 이곳은 6.25 한국전쟁 이후 중앙시장 상인들이 주변 산비탈에 모여들기 시작하면서 생겨난 산동네다. 가파른 언덕경사지를 지나 거미줄같이 연결된 좁은 골목길을 오르고 나면 도시경관이 한눈에 펼쳐진다. 망대 골목은 춘천사람들이 산업화시대를 거치며 살아온 삶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그리고 인간적인 정취와 스토리가 가득한 문화적 장소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 이곳은 재개발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인프라가 열악하고 주거환경이 좋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인간 삶을 통해 만들어진 역사적 의미를 지닌 공간이 허물어진다면 그곳에 담긴 수많은 기억도 함께 사라진다. 지리학자 데이비드 하비는 ‘도시는 이미지보다 그 안에 녹아 있는 서사가 지닌 스토리텔링이 중요하다’고 했다. 옛것을 철거하고 새로운 가치를 이식시키기보다 옛것을 현대에 맞게 지혜롭게 변모시키는 산토리니와 부산의 창의적 도시발전전략이 부럽게 느껴지는 것은 혼자만의 생각일까.

오홍석 (사단법인 인투컬쳐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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