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욱(작가, 춘천문인협회 회원)

1972년 8월 초의 어느 날, 나는 시내에서 교대 방향으로 가는 시내버스를 탔다. 강원대 교지 편집을 맡아 10월에 발행될 교지의 표지화를 해결하기 위해서다. 원고 수집은 다 돼 가지만 표지화가 안 돼 걱정이었다. 강원대에 아직 미술 관련 과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는 수 없이 여기저기, 표지화를 그려줄 만한 사람을 수소문해 찾다가 이웃한 교대에 ‘그림을 잘 그리는 나이 많은 복학생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는 그날 오후에 교대 방향으로 가는 시내버스를 탄 것이다. 

시내에서 교대까지는 시오리 남짓. 한 20분 만에 도착해 시내버스에서 내렸다. 교대도 강원대처럼 여름방학이라 캠퍼스에 인적이 그쳤다. 하는 수 없이 교대 앞거리에서‘그림을 잘 그리는 나이 많은 복학생’을 찾아보는 수밖에. 얼마 지나지 않아 한 노인네가 내게 귀띔했다.

“그 사람이 잘 가는 대폿집이 길 건너에 있어. 그 집에 가 봐.”

과연 길 건너 조그만 대폿집에 그가 앉아있었다. 다른 사람이라고는 주모밖에 없었으니 내가 찾는 사람인 게 분명했다. 그는 혼자 막걸리를 마시고 있었다. 술 때문에 간이 안 좋아서인지, 햇볕에 탄 건지 시커멓게 탄 얼굴로 나를 힐끗 쳐다보았다. 나는 초면이지만 정중히 고개 숙이며 물었다. 

“혹시 그림을 그리는 분이 맞습니까?”

“… 그런데요.”

나는 내 이름을 대며 찾아온 용건을 밝혔다. 그가 긴장했다가 이내 활짝 웃으며 내게 악수를 청했다. 그러면서 말했다.

“교지 편집을 맡았다니 필경 문학을 아는 분이지! … 반갑습니다. 우선 제 술 한 잔 받으슈.”

내가 공손히, 받은 술잔을 비우고 다시 넘겼다. 그가 내가 따라준 막걸리를 단숨에 들이키고는 단도직입적으로 이렇게 물었다.

“김승옥의 ‘서울 1964년 겨울’을 어떻게 생각하슈?”

바로 그 순간부터 그와 나는 소설 얘기로 빠져들었다. 얼마 후 다른 술꾼들이 대폿집에 들어와 소설 얘기를 편히 나눌 분위기가 못 되자 그가 내게 제의했다.

“가까운 데에 제 자취방이 있으니 그리로 갑시다. 그 방에서 술 마시며 밤새 문학 얘기 원 없이 나눕시다.”

막걸리값을 내가 치르려하자 한사코 가로막으면서 주모한테 이리 말했다.

“장부에 잘 적어놓으슈.”

외상으로 한다는 뜻이었다. 나는 민망해하다가 하는 수 없이 그를 따라 대폿집을 나왔다. 자기 자취방으로 간다더니 이번에는 웬 구멍가게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서 내게 이리 말했다. 

“좋아하는 술과 안줏거리를 마음껏 집으슈. 여기는 내 가게나 다름없거든.”

사실 가게 물건이 워낙 빈약해 마음껏 집을 술과 안줏거리가 못됐다. 어쨌든 나는 소주 두 병과 마른 오징어, 고등어통조림을 집었다. 그가 나보고 더 집으라고 재촉하다가 내가 다 집었다고 하자 가게 주인한테 말했다.

“장부에 잘 적어놓으슈.”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렇게 사는 동네의 대폿집과 구멍가게에 거침없이(?) 외상이 되는 이유가 있었다. 그가 그해 정초, 강원일보 신춘문예 소설부문에 ‘견습어린이들’로 당선되자마자 받은 상금을 몽땅 외상 갚는 데 썼던 것이다. 그 바람에 대폿집이나 구멍가게나 그에 대한 신뢰가 하늘을 찔렀던 것이니!

어언 반세기 되는 이외수 선배와 나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다.

* 이외수
1975년 《세대》지에 중편 <훈장>이 신인문학상을 수상함으로써 정식 등단. 장편 《꿈꾸는 식물》, 《들개》, 《칼》, 《산목》, 《벽오금학도》 등. 에세이 《내 잠속에 비 내리는데》, 《말더듬이의 겨울수첩》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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