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보통학교 과외잡지 《목마》 3호에 수록
근대서지학회가 일본서 발견, 《정전 김유정 전집》에 소개

한국 근대문학의 선구자 김유정의 작품이 약 85년 만에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최근 세상에 존재를 드러낸 김유정의 동화 <세발자전거>는 시인이자 수필가·번역가로 활동한 김소운(1907~1981)이 1935년 12월에 창간한 보통학교 과외교육잡지 《목마》 3호에 수록됐다. 

 <세발자전거> 전문 캡처     출처=《정전 김유정 전집》(소명출판)

김소운은 일본 시단에서 활동하면서 한국문학을 일본에 알리기 위해 힘썼으며, 1933년 일본에서 귀국해 《아동세계》, 《신아동》을 출간했으나 출자자가 빈번히 바뀌는 등 자금상의 문제로 지속적으로 운영하지 못했다. 《목마》는 일제강점기 당시 조선에서 유일한 과외교육잡지로 1936년 11월까지 7호가 간행됐다. 김소운은 직접 《목마》의 부제를 ‘보통학교 과외교육잡지’로 정했다. 이는 잡지가 심상소학교(1905년 통감부가 설치한 조선에 거주하는 일본인 아동 초등교육기관)에 다니는 일본인 아동이 아닌, 조선인을 위한 보통학교에 다니는 조선인 아동을 대상으로 했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하지만 오랫동안 《목마》의 실물은 세상에 존재를 드러내지 않았다. 그러던 중 올해 근대서지학회 회원인 릿쿄대 김광식 교수가 일본 이와테현 오슈 사이토 마코토 기념관에서 《목마》의 창간호 제1호를 확인했다. 김소운이 3대 조선총독 사이토 마코토에게 직접 증정한 것이다.

<세발자전거>가 수록된 《목마》 3호는 일본의 한 경매에 처음 등장했다. 한 일본인 학자가 경매물로 나온 《목마》 2호와 3호를 낙찰받았다. 이 사실을 파악한 근대서지학회가 일본인 학자로부터 원본을 빌려서 세부 내용을 살피는 순간, ‘金裕貞(김유정)’이라는 저자의 한자 이름을 발견했다. 알려지지 않은 김유정의 동화 <세발자전거>는 그렇게 85년 만에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근대서지학회는 《목마》 2호와 3호를 영인본(影印本)으로 출간할 계획이다. 영인본이란 원본을 사진이나 기타의 과학적 방법으로 복제한 인쇄물이다.

조선일보 연재 중 검열로 차압된 <소낙비> 일부      출처=《김유정 소설 소낙비의 검열과 복원》

현재 <세발자전거>는 김유정 연구자인 유인순 강원대 명예교수의 《정전 김유정 전집》(소명출판) 중 2권에 사진으로 실렸다. 한편, 전집은 그동안 모든 김유정 전집에서 누락 되었던 <홍길동전>을 비롯해 소설·수필·서간·일기·설문·번역소설들, 사진 자료들, 김유정이 등장하는 이상과 안회남이 쓴 실명소설, 박녹주 등 지인들의 회고까지 김유정의 모든 것을 담았다. 김유정의 토속적 어투를 살리면서 현대식 언어와 표기로 바꾸어 현대 독자들의 이해를 도왔으며, ‘김유정 작품 어휘 사전’을 별도로 마련했다.

<세발자전거>는 세발자전거의 주인 ‘기영’에게 ‘복동’이 자전거를 빌려 달라고 조르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기영’은 자전거를 빌려주지 않고 약을 올리기만 한다. 보다 못한 복동의 언니가 묘수를 내어 ‘기영’을 골탕 먹이는 동안, ‘복동’이 마음껏 자전거를 타는 장면으로 끝이 난다. 당시 생활상을 핍진하게 그리면서 해학이 넘치는 김유정의 개성이 잘 드러난다. 짧은 분량임에도 메시지가 뚜렷하며, 완결성을 갖췄다. 삽화는 채만식의 《탁류》, 이태준의 《청춘무성》 삽화를 그린 정현웅(1911~1976) 화백이 그렸다. 이로써 김유정의 작품은 현재 알려진 32편에서 33편으로 늘었다. 한편, 김유정문학촌은 47호 겨울 소식지에 <세발자전거>를 수록할 예정이다.

조선일보 1935년 2월 5일 석간 3면, <소낙비> 7회가 담겨야 할 하단이 검게 칠해져 있다.      출처=조선뉴스라이브러리

김유정 <소낙비> 일제 검열로 훼손

조선일보에 6회 연재로 끝난 소설 <소낙비>가 사실은 검열에 따라 연재가 중단됐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김유정학회가 창립 10주년을 맞아 펴낸 학술서 《김유정 문학과 문화 충돌》에 담긴 논문 12편 중 《김유정 소설 소낙비의 검열과 복원》에서 이 같은 사실을 입증했다. 논문의 저자인 김정화 선문대 연구원과 문한별 선문대 부교수는 《조선출판경찰월보》의 행정처분 기록을 통해, 김유정의 <소낙비> 7회 연재분이 선정적인 내용이라는 이유로 풍속 관련 행정처분을 받아 검열 후 차압된 사실을 밝히고 검열로 훼손된 일부를 복원했다. 조선일보 1935년 2월 5일 석간 3면에는 <소낙비> 7회가 담겨야 할 하단이 검게 칠해져 있고, 2월 7일 석간 3면에는 <소낙비>의 연재 중단 소식을 아주 짧게 알리고 있다. 

차압된 7회에는 춘호의 아내가 돈을 마련하기 위해 리주사에게 매춘에 나서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논문을 통해 당시 일본 제국주의가 안녕질서(치안) 방해, 풍속괴란 등을 명목으로 대대적인 가위질에 나섰음을 알 수 있다. 결국 현재 알려진 <소낙비>는 완결된 작품이 아닌 셈이다. 하지만 남겨진 김유정의 육필원고가 전혀 없어서 <소낙비>의 본래 내용이 좀 더 길 것이라는 점만 추측할 수 있다.

박종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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